내게 죽음이란
학생 간호사 시절,
내게 환자는 case였고, 사망은 event였다.
Arrest의 상황은 빨랐고, 극적이었으며, 나와 동떨어진 다른 세계였다.
보호자와 연락하고, 보호자가 원하니 올때까지 CPCR을 계속해야하는 상황.
첫 10분. 모든걸 쏟아붓고.
다음 10분. 체념해가는 시간.
내게는 단순히 그런 상황이었다.
7월8일.
사망의 event는 내게 현실을 요구했다.
많은 생각이 들지만.
가장 힘든것은., 이 모든 감정과 후회를 덜어낼 방법은 오직 시간이고
그 방법이 시간인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새록하다.
00이를 처음 본 날.
난 990g의 00이를 보았고,
시간이 지나,
00이가 nasal vent를 weaning하고, high flow를 달았다.
면회시간 어머니는 00이 발치, 의자에 앉아 숨죽여 우셨다.
난 00이가 치료의 한단계 한단계 잘 나아가고 있음을 설명했고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여드렸다.
11월 28일.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vent 카운트를 하며 누군가 밤사이에 humming-x를 달았음을 알았다.
그게, 00이 인줄은 몰랐다.
“CPR 해야할거 같아요”
큰소리가 들렸다.
전공의를 찾아 당직실을 두드린다.
HR와 SP02가 떨어지고 알람이 울렸다.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Epi를 준비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산소모니터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전화상 전공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큰 카트를 끌어왔다.
N/S를 재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손이 떨렸다.
Dopa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약을 찾으러 뛰어가고
누군가는 시린지 펌프를 장착하고
누군가는 자리를 만들면서
누군가는 계속 기록하고
누군가는 보호자에게 전화하고
누군가는 계속 00이를 압박했다.
긴급하고 복잡했던 상황.
다행이도 00이는 그 고비를 넘겼었다.
그러나
다음 근무때 내게 들린건. 00이의 사망소식이었다.
간호사로서 죽음은 많은 event들 가운데 하나.
가족과 내게는 현실.
간호사로서 더 공부하고, 더 기민하게 반응해서
가족에게는 피붙이를 잃은 슬픔을 주지 않기를.
먹먹해지는 이 가슴 느끼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