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셉터 선생님을 떠올리며
첫 근무지인 병동에 발령받아 두 달간의 트레이닝을 받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신규간호사들의 프리셉터가 되고, 오지 않을 것 같던 30대를 맞이하였네요. 프리셉터 선생님이 처음에 저의 프리셉터라고 알려주셨을 때 사실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병동에서 제일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제 죽었구나 나는, 과연 일년은 커녕 두달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어요. 하지만 프리셉터 선생님의 쿨함과 불현 듯 느껴지는 따뜻함에 두 달간 무사히 트레이닝을 받고 여기까지 왔네요. 게다가 사실 그 선생님이랑 이름이 같아서 운명의 프리셉터와 프리셉티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었거든요.
그 선생님은 술을 굉장히 즐기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항상 근무가 끝나면 술 한잔 할 수 있는 곳으로 저를 인도하셨어요. 나이트 근무도 예외는 아니었죠. 공원에서 선생님은 맥주한 캔, 술을 잘 못 마시는 저는 쥬스 한 개를 사가지고 선생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눈물 한 모금도 함께 들이켰었던 기억이 드네요. 신규는 울면 안된다. 울어도 안 보이는 곳에 서 혼자 삼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저는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리 쓴소리를 들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때는 정말 온갖 설움과 힘들었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스쳐가면서 선생님 앞에서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이야기 하지 말아달라고 선생님께 신신당부를 하면서요.
그러고는 프리셉터 선생님은 다른 곳으로 전보를 가시고, 가끔 연락정도 하는 사이가 되었고, 미혼이고, 앞으로도 결혼 생각이 없으셨던 선생님은 골드미스로 지내시 던 중 제가 먼저 결혼소식을 알리게 되어 오랜만에 선생님께 청첩장도 드리고, 결혼식에 초대를 하였습니다. 결혼식날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언제오시나 하는 마음에 입장시간이 다가오고, 아빠의 손을 잡고 문 밖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익숙한 그림자가 제 옆에 비춰졌습니다. 그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에 제 옆에 서 계셨던 분은 선생님이셨어요. 마치 자식 시집보내는 부모님 마음으로 저를 옆에서 지켜봐 주셨을 때 벌써 6년이나 지난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무척이나 든든하고, 감동받았답니다. 긴장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선생님은 식장에 들어가시지도 않고 끝까지 제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봐 주셨어요.
때로는 엄마 같고, 때로는 언니 같은 제 프리셉터 선생님을 정말 존경하고, 항상 감사하며 근무하고 있구요, 6년간 근무하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환자들과의 수많은 라포들이 있지만 지금 제가 있기까지의 선생님의 역할이 무척이나 컸기 때문에 이렇게 사연을 적습니다.
선생님이 만약 이 글을 보신다면 쑥스럽고 무뚝뚝한 성격 탓에 직접 전하지 못한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항상 감사하고, 선생님이 계셨기에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이렇게 종종 선생님께 허심탄회하게 저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살아가는 이야기 하면서 술한잔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지속되었으면 좋겠네요. 항상 건강하시구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