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_table=nstory&wr_id=262&page=17 병원간호사회 본문으로 이동

간호사, 플러스 스토리

참신한 시각으로 간호사와 함께 호흡합니다.

간호사 24시, 그 story 가 궁금합니다.

간호 업무를 하면서 눈물 나게 감동했던 일들, 동료 간호사의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선행,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기가막힌 아이디어 활동, 간호사라 행복했던 그 때 그 순간,
우리끼리 通하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습니다.

형식이나 분량에 제한없이 자유롭게 작성하셔서 언제든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내용 중 채택된 글은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되며,
추후 채택된 글들을 모아 책자로 발간하고 소정의 원고료를 보내드립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 1.'간호사, 플러스 스토리'의 취지와 맞지 않는 글은 게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2. 응모 횟수에 제한은 없으나, 한 번 응모한 글에 대해 수정은 불가합니다.
  • 3. 응모한 원고는 반환되지 않으며, 채택 여부를 문자 메시지로 알려드립니다.
  • 4. 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한 후 온라인으로 응모하시기 바랍니다.
신청서 다운받기 응모하기

피난처.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난민선교를 다녀와서)

피난처.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난민선교를 다녀와서)

 

2016923. 2015년 네팔 지진 이후로 일년여만에 진료지원을 위해 요르단으로 떠나는 길. 작년 네팔 때와 사뭇 달랐다. 재해로 인한 급성손상이나 질환, 잠재적인 여진 위험으로 인해 상당한 각오를 한 상태에서 무사히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당시 전우애를 나눈 의료진 몇 명과 다시 함께 하게 되어 든든한 건지, 작년보다 한결 의연하게 한국을 떠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딸이 의료선교를 떠난다며 흰 봉투에 10만원을 담아 건네셨고, 그것으로 현지 스텝과 난민 어린이들을 위한 선물을 마련했다.

 

요르단을 오가는데 상당시간을 소모하고 겨우 4일 활동할 수 있다니 참 짧게 느껴져 조바심이 났다. 네팔 때는 여러면에서 급작스럽고 서툴었다면, 이번엔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알차게 준비하고 신속하게 팀을 구성해 필요한 물품을 배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파견경험자도 비경험자도 모두 발빠르게 호흡을 맞추어 점점 RPM을 높일 수 있었다.

 

숙소 화장실이 냄새나고 청소상태가 청결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음식이 지나치게 짜서 먹기 힘들었지만(쌀밥에도 소금기가 있어서 오이를 엄청 먹게 된다) 결코 불평할 수 없는 시내 호텔에 묵으면서 아침저녁을 챙겨먹을 수 있는 것도 호사라 느껴졌고, 점심마다 흡입하듯 먹은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어서 참 행복했다.

 

처음 이틀은 제라시에 있는 시리아 난민 어린이학교에서 진료했는데 이동하는 길에 저 멀리 흐르는 얍복강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저기가 바로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곳인가? 너무 멀어서 그런지 시내처럼 보이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산부인과 영상의학과 약국은 1층에 위치하고 접수, 활력증후 측정 및 질환분류,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외과 응급의학과 정신과는 2. 나는 약국에서 처방약 조제 및 주사약물 투여를 담당했다. 두층으로 나누어져 동선이 약간 비효율적일거라 생각했지만 선교사님들과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다. 종일 서서 일했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는 사람들 표정에서 호의와 환대를 느낄 수 있어 피곤한 줄 몰랐다.

 

셋째날부터는 바카로 이동해 난민학교에서 진료할 수 있었는데, 장소 컨디션이 기대이상으로 좋았고 시리아 난민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난민도 상당수 있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난민들이 허름한 차림에 비위생적일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한껏 치장한 듯 형형색색의 부르카와 액세서리, 멋진 가방을 걸치고 온 모습. "이들이 정말 난민이 맞나요?" 우리를 도와주던 한국인에 물었더니 "저도 처음엔 그렇게 느꼈지만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돼요. 손님을 대할 때 잘 차려입어야한다고 생각해서 가장 좋은 것을 두르고 오는 것"이라 일러준다. 아니나 다를까, 히잡과 부르카를 걷어내고 보면 허름한 옷들이 드러난다.

 

상기도 질환과 요로질환이 다수이고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과 척추질환, 피부질환 및 옴 환자와 간단한 외과적 시술 케이스도 있었지만 응급처치를 요하는 증상은 거의 없었다. 가임기 여성과 소아가 대다수를 차지했고, 산전진찰을 원하는 산모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애가 4-5명씩 있는데도 남편의 담석증이나 정맥류 때문에 임신이 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남편을 시리아에 두고 왔거나 공습경험으로 인해 악몽과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환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준비하는 동안 간단한 아랍어를 익혀가려고 공부했지만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공감을 표현하기에는 언어의 벽이 너무 높고,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약보다 경청과 공감, 치료적 의사소통이 절실한 사람들이 있을텐데...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손잡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너무 안타까웠다. 그저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으며 신의 평안을 빌어주는 게 최선이었다. 우리 팀에 정신과 교수님이 계셔서 참 다행이라고 위안하며...

 

돌아오기 전날은 오프로 보낼 수 있어서 관광 및 호텔, 교통, 식비 등의 명목으로 사비를 걷어서 페트라를 보고 사해근처 호텔에 묵었는데,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페트라에 대해 무지했던 나도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요새같은 좁고 높다란 협곡을 걷고 또 걸은 끝에 비로소 위용을 드러낸 알 키즈네.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인()들이 산을 깎고 다듬어 만든 때는 무려 2000년 전인데 페르시아 만과 홍해, 지중해를 잇는 고대 무역로의 중심이 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해리조트에서 자고 일어나 적막한 사해건너 여리고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휴전선 건너 북한을 바라보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죽어있는 바다라는 이름에 비해 사해는 지나치게 푸르고 아름다웠다.

 

주어진 기간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이런 일회성 지원은 늘 아쉬움이 남는다. 단 며칠 돌본다해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의구심과 함께, 환자들이 처방대로 약을 제대로 복용하고 운동을 할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너무나도 고마워하던 사람들을 볼 때 봉사를 통한 나의 기쁨이 더욱 크고, 매순간 좀 더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의 웃는 표정을 떠올리면서 지구 다른 한편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의료기관의 일원이라는 것이 뿌듯하고, 이런 활동을 후원해준 현대차 정몽구 재단에 참 고마운 마음이 크다. 앞으로도 여러 단체의 협력으로 난민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이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회복되어 정착하고 만족하며 살 수 있도록.

 

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