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3일 사랑스런 딸의 탄생!
나는 이와 함께 환자들의 아픈 곳을 보듬어 주는 간호사에서 잠시 내 딸의 100% 분신이 되는 엄마로 모습을 바꾸어야했다. 그리고 1년 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힘들다는 육아에 지쳐 갈 때쯤 다시 간호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휴직 전 내가 근무하던 곳은 소아심장 환자들을 돌보던 외과계 중환자실. 하지만 복직 후 내가 근무하게 된 곳은 소아과 일반병동이었다. 같은 소아를 간호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중환자실과 일반병동은 큰 차이가 있었다. 중환자실에서는 정해진 짧은 면회시간동안 보호자들에게 환자의 상태나 있었던 이벤트를 설명한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항상 특별한 주문 없이 잘 부탁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일반 병동에서의 보호자들은 적극적으로 환아의 치료나 간호에 참여하며 관심을 가지고 많은 공부를 한다. 그만큼 크고 작은 요청이나 질문 등등이 많았다. 한마디로 자신의 아이의 입원 생활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어쩌면 엄마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반응인 이런 보호자들의 모습에 내가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새로운 일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행하는 간호에 대한 약간의 불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호자들이 하는 질문에 그리고 요구에 나도 속 시원히 응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솔직히 때로는 질문과 요구의 보따리를 마구 풀어내는 보호자들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은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새벽에 잠시 눈을 떴을 때, 12개월 딸의 몸에서 열감이 느껴졌다. 열을 재어 보니 38.9도... 해열제를 먹이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집근처 병원으로 가보니 구내염이라고 했다. 일하느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엄마의 미안함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는 종일 딸을 간호하면서 나의 모습과 병동에서 항상 나를 찾던 보호자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마음이 늘 지금 나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지방에 있는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딸아이를 맡기고 출근한 다음날 나는 많이 달라져 있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과 보호자들의 목소리가 시간에 쫓기며 하는 나의 일이 아닌 애절한 엄마의 목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근무하는 소아청소년과 71병동은 낯선 곳이 더 이상 아니다. 자식을 키우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보호자들과 공감하고, 몸이 아파 불편한 환자들을 간호하는 간호사로서 그 책임을 다하는 책임감 있는 간호사의 소임을 다 할 수 있는 소중하고 익숙한 장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걱정하고 도와주며 아껴주는 동료 선후배가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공간이다.
이제 시작이다!
감사합니다! 저 이제 적응 완료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