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봉지안의 병아리
최근 재산기부와 함께 재능기부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기부의 새로운 형태로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는 재능기부라는 말은 개인이나 단체,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개인이나 기업의 목적에만 사용하지 않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용하는 기부를 말합니다.
이러한 나눔에는 조금 더 고귀한 또 다른 나눔이 있습니다. 바로 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 한 뇌사자의 생명 나눔으로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생명을 줄 수 있다는 장기기증. 저는 고귀한 나눔의 현장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외래에서 일하는 간호사입니다.
장기이식센터는 신장, 간, 췌장, 폐 등 이식받은 환자분들의 진료를 돕고, 어렵게 얻은 새로운 삶을 더욱더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게 교육하며 그분들의 고충을 해결해 줍니다. 이식을 받은 환자는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하기 때문에 약을 처방받기 위해 주기적인 외래방문이 필요합니다. 타과에 비해 높은 외래방문 비율로 환자들과의 친밀감은 높지만 그에 따른 어려운 고충도 많습니다. 1995년도에 장기이식을 하고 20년 이상 병원을 방문하시는 환자분은 신규간호사가 보이면 일부러 호되게 괴롭힐 때도 있고, 타과 당일진료가 어려우면 내가 장기를 이식한 환자인데 어떻게 당일로 진료를 못 볼 수가 있냐며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습니다. 또한 본인의 이름은 말하지도 않고 “나 왔어”라고 접수를 해달라고 하시면 마음속으로 ‘아... 누구시지’라며 곤란할 때도 많았습니다.
올해 유난히도 더운 여름날 어김없이 아침 일찍부터 외래진료가 시작되었습니다. 분주한 아침 시간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검은 봉지 하나를 접수데스크 안쪽에 놓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직접 기른 거야. 생긴 건 못생겼지만 맛은 괜찮아. 나중에 나눠먹어.” 검은 봉지 안에는 샛노란 병아리 빛의 참외가 있었습니다. 거주지가 서울도 아니셨는데 저희들 나눠주시려고 가져온 그 검은 봉지는 참으로 빛났습니다. 정말 손수 기르셨는지 울퉁불퉁 깎기도 힘든 참외이긴 했지만 무더운 여름날 저희에게 잠시나마 달콤함을 안겨준 그 환자분께 큰 감사의 마음을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