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소아청소년암 환자들과의 인연은 2002년 9월 4일 내가 세브란스병원에 처음 출근하던 날부터 시작되었다. 신규 간호사로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던 그 때 힘든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방긋방긋 웃으며 애교부리는 아이, 무덤덤하게 힘든 내색하지 않고 치료를 견뎌내는 아이들은 내게는 더없는 힘이 되었다.
꼬꼬마였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교 입학할 때, 까칠한 청소년이 어엿한 대학생, 사회인이 되었다고 병원에 찾아올 때, 정말 힘들게 힘들게 치료했던 아이를 완치클리닉에서 환한 웃음 지으며 만날 때, 그렇게 작은 인연들이 계속 이어져 나갈 때면 힘들었던 것은 모두 잊게 되고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나는 병원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만난 우리들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너무나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며칠 전만 해도 재잘거리던 아이가, 병동을 뛰어다니던 아이가 갑자기 하나님 곁으로 떠날 때면 바쁘다는 이유로 얼굴 한 번 더 보러 가지 못했던 것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못했던 것이 너무도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 있을 때 잘하자 ” 라는 말은 늘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시작된 인연이 언제 또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물론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또 후회하고 스스로를 다그칠 때도 많이 있다.
너무도 미안했던 아이, 가끔씩 생각날 때면 가슴이 먹먹해져오는 고집쟁이 아이, 콩깍지를 너무도 좋아했던 새침때기 아이, 유난히 정이 많고 어른스러웠던 아이, 커다란 눈망울에 천사처럼 예뻤던 아이, 귀여운 보조개 씩씩한 아이, 부모님께 늘 용기 주던 아이, 생일 날 책상을 가지고 싶어 했던 아이, 장근석을 닮았던 아이, 애교덩어리이면서 큰 눈망울을 가진 아이, 귀여운 슈퍼맨이었던 아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들, 시크한 게 매력이었던 아이, 털털한 여고생, 멋쟁이 디자이너 ... 이렇게 마음에 묻어두었던 아이들을 하나하나를 꺼내다 보니 갑자기 그들이 보고 싶다. 나는 그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해서 우리의 소중한 인연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들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작은 인연으로 간직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여전히 활력소가 되어 주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소중한 작은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우리는 매일 다짐한다. 희망을 가지고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