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rapport), 마음의 유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가끔은 그 것이 전부일 때도 있다.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힘든 순간이 있지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보호자들을 대할 때 이다. 중환자실과 같은 폐쇄 병동 특성 상 보호자들이 환자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30분 씩 두 번, 겨우 한 시간. 중환자실에서는 하루 중 1분도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다. 정말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지만 그 중 면회시간 역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보호자들에게 이 한 시간은 환자의 하루를, 의료진의 전부를 판단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은 없다.
면회 시간에 우리는 수많은 질문의 공세를 받는다. '왜 이렇게 부었나요.', '손발이 너무 차가워요.'와 같이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언제 퇴원할 수 있나요?', '깨어날 수 있을까요?' 같은 난감한 질문들까지. 하나하나 대답해주다보면 가끔은 이런 질문들에 지치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보호자들에겐 어느 질문도 사소한 것이 없고 하나의 질문에 백가지 희망을 담아 던지는 물음일 것이다. 그리고 내 말 한 마디와 태도가 환자와 가족들에게 때로는 중요한 의미가 되기도 한다.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자.
일하면서 감동 받기란 드물고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보호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사소한 요구에도 성심껏 응답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고 신뢰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여 라포(rapport)가 되는 것이고. 신규간호사일 땐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언제부턴가 하나하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때로는 내 태도가 너무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말투는 어땠는지 돌아보기도 한다.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임상에서 일하다보면 놓치기 쉬운 것들이 많다. 처음 시작은 언제 감동을 받았을까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먼저 그들에게 감동과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