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이야기-喜怒哀樂>
이대 목동병원 82병동 송예슬
안녕하세요?
저는 ‘마의 3년차’를 잘 견디고 있는 이대목동 병원 혈액종양내과 병동 간호사입니다. 입사 후 어떻게 2년 8개월이 흘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규 땐 마냥 신규 딱지를 언제 뗄까, 1년을 잘 넘길 수 있을 까, 나도 과연 올드 선생님들처럼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왔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견디고 병원을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든든한 동기들 덕분입니다. 저를 포함한 동기 5명이 서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동기들 중에 한명이라도 듀티가 같은 날이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일도 잘되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간호사로서 2년 8개월간 일을 하면서 짧다면 짧은 기간 이지만 여러 가지 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뻤던 일들, 화가 난 일들, 슬펐던 일들, 즐거웠던 일들... 지금부터 소소하게나마 이런 저런 제가 겪었던 이야기들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喜 희
제일 기뻤던 순간은 바로 5-6개월간 혹독한 차트 트레이닝을 마치고 난 후 처음으로 맞이한 ‘독립’의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혹여나 실수하진 않을까 일이 더뎌 다른 동료 선생님들에게 피해를 드릴지 않을까 가장 많이 두렵고 떨리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장 4년간의 간호학과 공부와 2년간의 간호학생 실습, 5-6개월의 혹독한 차트 트레이닝이란 굴곡진 산등성이를 넘고 넘어 비로소 간호사다운 간호사 라고 칭하여 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밀려드는 오더에, 쌓여만 가는 업무에.. 모든 것이 버거웠지만 지금까지 몸과 머리에 익히고 배운 것들을 혼자의 힘으로 실행에 옮기며 업무를 잘 끝마쳤다는 생각에 제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생각합니다.
怒 로
신규 땐 정말 자잘한 실수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제 자신에게 화가 났던 실수도 있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당뇨병이 있어 인슐린 주사를 하루에 한번만 투여 하고 있는 신환이 있었는데 history를 끝마치고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 저녁에 인슐린 주사를 또 한번 투여 할 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투여하기 전에 발견되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 때 크게 깨달았습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정확 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겨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哀 애
제가 근무하고 있는 혈액종양내과병동은 말기 암 환자들이 완화치료를 위해 많이 입원하고 그만큼 또한 많이 사망하시기도 합니다. 독립하기 전부터 저와 라포 형성이 좋았던 말기암 환자가 한분 있었는데 제가 가장 슬펐던 기억은 독립 후 처음으로 사후 처치를 담당했던 환자가 하필 그 환자분이였을 때입니다. 사후 처치를 하며 옆에서 오열하는 보호자들을 보며 저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직까지도 정정하셨을 때의 모습이 하나 하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고 그립기도 합니다.
樂 락
제일 즐거웠던 기억은 바로 환자분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을 때입니다. 1004데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환자분들을 한데 모아 따뜻한 차도 대접하며 발 마사지, 손 마사지, 머리 마사지 등을 해드리는 날이었습니다. 병원 입사 이래 처음 해본 봉사활동 인지라 많이 낯설고 환자분들을 어찌 대할지 몰라 당혹스러웠지만 교육 받은 것을 토대로 정성껏 한 분 한 분 마사지를 해드리고 또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을 마다 뿌듯함과 즐거움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봉사 한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 지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연차가 쌓이면서 어떤 또 다양한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될지 걱정 반 기대 반 이지만
怒로, 哀애 보단 喜희, 樂락이 더 많아서 즐겁고 보람차게 일하고 싶은 소망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