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반창고
2016년 1월 어느 날 인공 신장실 회의실 게시판에 붙여진 연간 계획표를 보았다.
‘이럴 수가 내가 2016년 간호본부 사업인 공감 간호의 리더가 되다니! 우와!’ 나를 공감 간호 리더로 선정해 주신 수선생님께 감사했고 잘 해내야겠다는 부담도 있었다. 일단 공감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감 연습’이라는 책을 읽었고 ‘좋은 간호’에 대한 논문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인공 신장실 환자가 생각하는 공감 간호와 간호사가 생각하는 공감 간호를 설문지로 조사하였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경청’과 ‘대상에게 필요한 정보제공’이 가장 실질적인 기술인 것 같아 공감 간호 시행 날에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로 계획하였다. 무엇보다 간호사들의 동기부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름다운 동행’라는 책을 구비하여 인공신장실 모든 간호사들이 읽을 수 있도록 회의실 내에 두었다.
드디어 공감 간호 시행 날인 3월 15일이 되었다. 나의 공감 간호 첫 번째 대상자는 본원 유지 투석을 6년째 받고 있는 여자 72세 환자 안oo님. 안00님은 나와 라포가 잘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멋쟁이로 옷도 예쁘게 차려 입으시고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해주셨는데 최근에는 힘없고 우울한 표정으로 구멍이 뚫린 회색의 츄리닝을 입고 오시는 등 너무 변한 모습에 걱정이 되어 대상자로 삼았다. 나는 투석을 하고 계신 안oo님에게 갔다. “어르신, 오늘은 어르신 말씀 들으려고 온 날이에요. 어르신이랑 이야기 하고 싶어서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하고 물었다. 안oo님은 “죽지 못해서 살지. 요즘은 입맛도 없고 웃기도 싫어. 작년에 영감이 쓰러지고 요양병원으로 갔어. 그나마 주말에 한 번 오는 아들 내외는 영감에게 가고, 나에게는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야.”라고 말씀하셨다. 그저 나는 “네. 그렇군요.”, “얼마나 힘드세요?”, “얼마나 외로우실까?”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외로운 안oo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전달되어 눈물이 났다. 안oo님은 혼자 사는 게 너무 외로워서 강아지와 산다고 하셨고 미국에 이민 간 딸이 그립다고 하셨다. 다행히도 일요일에는 친한 친구가 위로 차 안oo님의 집을 방문한다고 하였다. 안oo님이 하시는 말씀을 1시간 반 동안 듣고 있는데 어느 새 투석을 마칠 시간이 되어 바늘을 제거해 드리고 지혈을 해드렸다. 나는 안oo님 손을 꼭 잡고 “어르신. 힘내세요.”라고 말씀 드렸다. 안oo님은 “오늘 내 이야기 들어주느라 고생했네.”라고 대답해주셨다. 그 날 점심식사를 하고 오신 수간호사님이 나에게 “오늘 안oo님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활짝 웃으면서 먼저 인사해 주더라구요. 선생님이 안oo님 말을 잘 들어주었나 보네요.”하고 말씀해주셨다. 그 후 안oo님은 예전의 밝은 미소를 다시 지으시며 인사하였고 반짝거리는 큐빅이 박힌 화이트 니트티를 입고 오셨다. 너무 예뻐 보였다. 한 달이 지난 후 안oo님이 나를 보면서 “선생님이 그 때 이야기를 들어준 날 이후 힘이 났어. 너무 고마워요.”라고 말씀해주셨다. 안oo님을 변화시킨 공감과 경청의 힘이 놀라웠고 나에게는 이 일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두 번째 대상자는 남자 54세 환자 송oo님. 투석을 시작한지 불과 이주일 밖에 안 되신 분으로 우울해 보이는 과묵한 환자분이셨다. 투석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투석과 관련된 불안감 정도를 사정하고, 정서적 지지와 함께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 위하여 대상자로 정하게 되었다. 공감 간호 시행 날이 송oo님의 퇴원 날이었다. 투석을 하고 계신 송oo님은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언제 깨실라나?’하고 송oo님을 살폈다. 드디어 송oo님이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계셨다. 나는 송oo님에게 다가가서 “송oo님 많이 피곤하시지요? 오늘 퇴원하시는 날이네요? 혹시 궁금한 것 있으신가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송oo님은 어색해 하면서 “네. 오늘 퇴원해요. 병원비가 얼마나 나왔지요?” 하고 물어보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예상 병원비를 알아보고 송oo님에게 대략 700만원 정도라고 말씀 드렸다. 송oo님은 걱정스런 얼굴로 지금 아내가 병원비를 구하러 다니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나는 ‘퇴원 당일 날 병원비가 없으시다니……. 아! 이 분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이시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송oo님, 지금 경제적으로 많이 부담이 되시는군요. 걱정이 많이 되시겠어요.”라는 나의 말에 송oo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송oo님은 전라도 부안에 있는 섬에 살고 있고 섬에서 혈액 투석하는 병원까지 다닐 수가 없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복막 투석을 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앞으로 약을 배에 실어 다니는 것도 걱정이고 약 값도 걱정이라고 하였다.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것이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문득 사회복지가 생각났다. 사회복지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면 송oo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사회 복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송oo님의 딱한 사정을 말하고 필요한 사회복지와 관련된 정보교육을 부탁하였다. 타과 의뢰도 없이 전화 한 통으로 내 부탁을 들어준 사회 복지사는 환자에게 직접 필요한 사회 복지 정보를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정말 기뻤고 그 사회 복지사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내용을 환자와 병동 간호사에게 인계 하였고 환자는 퇴원하였다. 한 달 후, 송oo님이 궁금하여 전화를 걸었을 때, 송oo님은 퇴원하는 날 사회 복지사 교육을 잘 받았고 차상위로 인정되어서 퇴원 시 병원비도 170만원 정도만 내었다고 하며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송oo님이 밝은 목소리로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음이 나의 마음에 전해졌고 나의 마음도 밝고 따뜻해졌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보람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던 기쁜 경험이었다.
공감 간호와 관련하여 병원에서 시행한 ‘소시오 드라마로 공감을 이해하다.’라는 교육에 참석했다. 이 날 연출된 드라마에서는 팀장님들이 일반 병동 간호사의 역할을 맡고, 일반 병동 간호사들이 불평이 심한 고객의 역할을 맡았다. 실제 상황처럼 생생하게 연기하는 간호사들과 연륜이 있는 팀장님들의 문제 해결 과정을 보면서 타 부서 간호사들의 상황이 이해가 되고 환자의 입장이 공감이 되는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불만 고객을 응대하는 간호사들의 힘든 마음을 팀장님들도 공감해주셨는데, 공감 받는 느낌이란 나를 인정해주는 따뜻함이라는 것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하여, 모두와 공감하며 환자에게 진심 어린 공감 간호를 시행하고, 간호의 대상이 환자라는 사실을 넘어, 한 분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간호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 마음의 헤아림이 다져진 것 같아 기쁘다. 상처 난 곳에 붙이는 반창고처럼, 환자의 지친 투병과정에 살아갈 힘을 실어 주는 따뜻한 지지로, 환자의 아픈 마음에 반창고가 되어주는, 그런 간호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