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도 3층에서 10층까지 몇 번을 오르락
내리락 했는지 모른다. 어깨가 무너질 거 같고 다리를 나도 모르게 끌게 된다.
병리과를 지나고 재활의학과를 지나고 비뇨기과 외래를 거처 사무실로 걷는다 .
멀리서 신부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셨나 보다 “ 고선생 나 마음이 아파요 상처 좀 치료해주세요 하하 “ 땅만 무심히 쳐다보며 걷는 내가 처량해 보였을까 아니면 힘들어하는 내 영혼을 토닥토닥 감싸주고 싶으셨던 걸까 장난스럽게 건네시는 그 말씀에 기운이 난다.
그렇다. 난 내가 자랑스러워 하는 우리 병원의 상처간호사다.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이 업무를 어떻게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전문간호사로서의 역할을 독자적이고 창의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을까…
간호부장님은 걱정 말라시며 내가 전폭적으로 지지해 줄 터이니 여기에 너의 열정만 심어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 마음은 천 가지 만 가지의 고민과 생각들이 뒤죽박죽 되어 풀리지 않는 어려운 미적분 문제를 풀어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상처간호사로서 나의 업무는 우리 병원의 욕창 및 여러 가지 상처 파악부터 시작하였다. 낯선 병동 선생님들에게 한 가득 친절을 얼굴에 머금고 인사를 건네며 나란 사람이 상처간호사이고 아직은 어떻게 일을 시작해야 할 지 모르지만 열심히 하겠노라는 이야기를 건네며 병동에서의 욕창 발생 이유와 예방의 한계, 치료방법 등등을 한 달이란 짧은 시간 동안 꼼꼼히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간호부와 진료부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내면 낼수록 하루 하루가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는 드레싱의 체계와 다양한 새로운 방법들의 적용을 어루어야 하고 정신적으로는 틀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새로운 파트의 프로세스를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구축해야 하기에 미숙한 나에겐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상처간호가 잘되고 있는 병원, 우리병원과 비슷한 규모의 병원, 같은 지역구에 있는 병원들을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쫓아다니며 얼마나 많이 보고 외우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내 마음엔 저렇게 많은 병원들의 장점들만 다 모아서 우리병원에 활용해야지 하는 기특한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나란 사람한테 믿을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열정이란 그 놈만 가슴에 품고 뛰고 또 뛰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상처 간호의 업무 프로세스와 단기 중기 장기의 계획들이 내 손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난 생각했다. 상처간호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욕창이 생긴 다음에 드레싱을 하는 것이 주일까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일까 사실 후자가 정답일 텐데 정작 많은 병원에서는 드레싱이 주 업무가 되어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병원에서는 어떻게 해야 욕창 예방이 될까…
머리가 아팠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느라 며칠이 가도 답도 뭣도 나오질 않았다. 왜냐하면 나를 비롯한 우리병원 간호사들은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정말 지금 이순간 우리 간호사들은 시간에 쫒기고 일이 넘치고 환우 분들은 심적, 육체적 고통을 같이 지고 가자고 매달린다.
여기서 욕창예방을 할 여력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또 하다 보니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광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수많은 병동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나다니면서도 제일 중요한 그것을 놓치고 생각한 나를 질책하면서 그 순간을 그 광경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안에 고스란히 담아보았다.
검사와 수술, 입원, 퇴원이 밀리고 간호사들을 도와줄 직원님도 다른 업무로 병동에 안 계시고 환자분은 검사를 위해 병실에서 어느 틈에 나오셔서 스테이션 앞에 대기 중이신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어디서부터 보고 계셨던 건지 병원에서도 연배가 많이 높으신 옆 병동 파트장님께서 “ 제가 모시고 다녀올께요 이송표 주세요 “ 하시며 이동 침대에 누워계신 환자분께 환자 확인 및 검사 확인을 하시더니 침대를 끌고 유유히 검사실로 가셨다.
그렇다. 나란 존재가 그 바쁜 업무에 도움을 주면 된다. 그 전쟁 같은 하루 하루를 견디는 여러 선생님들에게 내가 뭔가 조금이라도 힘을 덜어내 주면 되는 거다 어떤 일이 먼저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해야 되느냐에 초점을 맞추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난 병동이나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중증도가 높아 초래된 욕창 발생과 드레싱의 지연 등으로 빚어지는 많은 불평과 불만을 듣기 전에 내가 먼저 관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난 일단은 마음 고생 보다 몸 고생을 먼저 선택한 것이다.
두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묶고 다니는 것 같이 버거운 하루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년이 되다 보니 나란 존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병동을 지나가면 일단 우리병원 간호사들은 경쾌하고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선생님’ 하며 나를 불러 세운다. 반갑다는 표현이리라… 바쁜데 미안하다며 끈끈한 소통의 시작점을 먼저 건넨다.
그리고 병동 선생님이 그토록 사랑하는 환우 분들의 상처 문제들을 문의한다. 거기엔 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분명히 있을 것이며 환우에 대한 진심이 묻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몸은 힘든데 마음이 행복했다. 다리는 아픈데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 옛날 우리 아버지들은 집안에 가훈이라는 이름으로 근면 성실이라고 씌여진 액자를 집안 가운데 걸어놓으셨다. 그 식상하고 당연한 단어가 유년시절 내내 걸려있었는데도 한번도 거기서 의미를 찾으려거나 관심을 가지려 하질 않았다. 그냥 거실 중앙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장식품 뭐 그 정도만 생각했다. 우리네 아버지들이 당신 자식의 인생은 꼭 이렇게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음을 사십 년을 살고서야 알아가고 있었다.
사람은 그리고 조직은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껴안을 준비가 되어있고 근면과 성실함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준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터득한 기분이었다.
간호부의 지원으로 각 병동마다 ‘욕창관리 병동간호사’ 를 뽑아 욕창예방 활동에 돌입하면서 그리고 항상 가슴엔 근면과 성실이라는 우리 집의 구태의연한 가훈을 품고서부터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봐오던 여러 진료부에서도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나를 찾기 시작했다.
‘욕창관리 병동간호사‘라는 모임의 20명이 넘는 각 병동 선생님들은 한 달에 한번씩 모여 case study , literature review, 이론교육, 실습 등으로 지식과 기술을 쌓아갔고 각 병동마다 욕창예방과 관련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모아오고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커뮤니티를 만들어 같이 수다도 떨고 최신 지견들을 공유하며 열심히 꾸준히 1년 간의 욕창예방 활동을 잘 엮어갔다..
결론을 객관적으로 다 표현해줄 수는 없었다. 욕창 지표의 숫자가 모든걸 설명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큰 파일 두 개 분량의 교육 성과와 욕창예방 관리 체계, 욕창발생 시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의사소통의 통로를 만들어 놓고서 1년간의 치열한 교육 과정이 끝났고 1기 욕창관리 병동간호사들은 2기 후배님들에게 그 자리를 이어주었다.
2기가 출범하고 우리는 조금 더 적극적인 욕창 예방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욕창예방 중재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용 가능한 임상연구를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21명의 2기 욕창관리 병동간호사 선생님들과 6개월간 꾸준한 노력과 열정으로 연구를 진행해 나갔다.
중재를 동일하게 하기 위해 조를 짜고 퇴근 후 시간을 맞추어 중재에 대한 동영상을 모두 같이 제작하고 일도 많고 탈도 많은 바쁜 시간 중에 만나가며 교육받고 실습하고 체크리스트로 테스트도 하고 각 소속 병동의 욕창 위험이 높은 환우 분들에게 직접 욕창예방 중재를 시행하고 증례서식지도 작성하며 어렵고도 힘든 시간들을 즐거움으로 뿌듯함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우리 성과를 발표하게 된 학술대회가 있던 날 리허설도 해야 하고 상처간호 의뢰되신 환우 분도 돌봐드려야 하고 챙겨야 할 것도 생각할 것도 많았던 그날 정신이 반쯤은 쏙 빠져 있던 시간들이 지나고 발표도 시상도 이렇게 저렇게 끝나가고 있었는데 핸드폰으로 문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각자 다른 파트의 일원으로 나와 함께 자리하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 우리가 힘들었지만 이루어 내었다는 뿌듯함 그리고 자랑스러움, 성취감.. 이런 세상에 아름다운 단어들을 나의 핸드폰 문자 메세지에 가득 채워주고 있었다.
나의 열정에 혼자서 긴 박수를 보내며 돌아서는데 대강당 저 뒤에서 김선애 선생님이 뛰어온다.
김선애 선생님은 수술실 욕창관리 병동간호사이다. 부서 특성상 욕창발생이 심하게 되지도 않고 딱히 욕창예방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어 내가 별 도움을 못 주었던 선생님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연구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동영상 제작이나 허드렛일들을 도맡아 했고 모임마다 열심히 공부하고 알려고 노력했으며 마음씨 또한 착한 선생님이었다. 그런 선생님에게 난 일에 시간에 지치다는 이유로 알면서도 모른 척 지나갔던 미안한 선생님이기도 했다.
말수 적고 순하고 착한 그 사람이 나에게 이런다 “ 선생님 너무 고생하셨어요 저 너무 좋아죽겠어요 우리가 해냈어요” 갑자기 뜨거운 것이 눈 속 저 깊은 곳에서 철퍼덕 파도 치듯 밀려온다.
우리가 한마음이었다는 생각을 2년 동안 한번도 해보지 못한 나의 미숙함이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한마음 이었음을 욕창관리 병동간호사라는 좀 세련되지 못한 이름이지만 거룩하고 깊고 모방해 낼 수 없는 끈끈한 사랑으로 뭉친 조직임을 나에게 김선애 선생님이 이야기 해주는 거 같았다.
이젠 내 옆에 나보다 딱 10배 열정이 더 많은 후배 선생님이 함께 해주고 있고 2기 욕창관리 병동간호사 선생님들은 우리 두 사람보다 딱 20배의 열정을 더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리더가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그리고 구성원 각자가 리더의 생각과 행동이 되어 같이 움직인다면 우리 조직 문화의 미래는 눈부실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어느 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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