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아빠는 어깨가 아프다고 하신다. 봄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 어깨가 이제는 수저 하나 들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하니 약간 호전되는 가 싶더니 도로 제자리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정밀검사를 했다. 어깨 인대에 심각한 손상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만 된단다.
순간 멍한 기분이 들었다. 무심하게 아빠의 아프다는 하소연을 한 귀로 흘렸던 내 자신이 그렇게 죄스러울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자다가 돌아누울 때도 힘들다 하셨었고 혼자 드시는 세끼 식사가 얼마나 맛있을까, 이제는 그마저도 수저 들기 힘들어 먹는 게 고역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랬다. 아빠는 나름 바쁜 일상에 쫓기는 딸에게 괜한 걱정거리 하나 더하는가 싶어 많이 참고 하신 말씀이었는데, 무심한 딸은 아빠가 보낸 신호를 내 편리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판단하고 그리고 일부는 그냥 흘려들었다. 많이 아프셨을 텐데 그리고 통증 때문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셨을 생각을 하니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열이 나서 펄펄 끓는 아이를 안고 밤새 기도로 꼬박 날을 샌 적도 있고 뛰어 놀다 넘어져 생긴 무릎의 생채기에 속상해 하기도 했다. 나도 그런 엄마인데, 하물며 아빠도 나를 똑같은 맘으로 그렇게 키우셨을진대 내 품의 아이가 아픈 것에는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나를 낳아 주신 부모의 아픔에는 나 몰라라 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워진다.
아빠는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하셨다. 관절 내시경을 통한 간단한 수술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빌려 아빠는 도리어 나를 안심시키신다. 그리고 애써 태연한 척 하신다. 수술 시간이 다가오자 자주 화장실을 드나드신다. 아빠의 뒷모습에서 불안과 걱정이 읽혀진다. 왜 안 그러실까. 다만 자식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그러하신다는 걸 알기에 이 순간 위로가 되지 못하는 나도, 아빠도 엄마 없는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사실 내 일터는 수술실이다. 매일 이루어지는 수술실의 일들이 내겐 일상이 되어 버렸다. 수술실 안에 감도는 무거운 긴장감,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해선 안 되는 완벽함을 필요로 하는 분위기는 인간의 감성을 억제시키도록 한다. 어느새 나도 감성보다는 이성을, 따스함보다는 냉철함을 더 먼저 생각하게 된 듯하다. 두려움에 신경이 금방 끊어질 듯 한껏 잡아당겨진 팽팽한 고무줄처럼 된 환자를 대하면서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대하지는 않았을까.
대기실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 가족들의 마음도 희미하다.
아빠가 들어가시고 굳게 닫힌 수술실 문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빠, 무사히 잘 마치고 오세요. 틀림없이 다 잘 될 거예요.’
이 순간 맘속으로 비는 이 말은 아빠에게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다.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이렇게 긴 줄 몰랐다. 내내 맘을 졸였다. 일어나서 서성거리다 앉기를 여러 차례, 혹시나 자리를 비운 사이 보호자를 찾을지 몰라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나와 같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주위의 다른 보호자들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기도하는 사람, 불안한 마음을 애써 책에 붙들어 두려는 사람, 종이컵을 바스라질 듯 꽉 쥐고 있는 사람... 이 사람들도 나와 다르지 않는 맘이라는 생각이 들자 동변상련이랄까 동지애가 느껴진다. 전에는 어째서 이런 마음들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내 쪽에서 먼저 눈과 귀와 마음을 닫은 건 아니었나. 이 순간부터 달라져야겠다. 불안한 환자를 위로하는 말엔 건조한 습관이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처럼 두려움에 떠는 환자의 차가운 손을 마주 잡는 나의 손에서 따뜻한 온기와 격려의 손길이 전해지길 빈다.
드디어 수술을 마친 아빠는 회복실로 옮겨졌다. 건강하게만 보이던 아빠의 초췌한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돈다. 눈물에 가려진 딸은 아빠 얼굴이 뿌옇게 보이고 아직 마취에서 덜 깬 아빠 눈엔 딸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인다. 얼굴을 쓰다듬고 서로를 위로한다. 수술 후 경과도 좋아서 퇴원을 하셨다. 하지만 두고두고 아빠의 아픈 어깨는 나에게 효를 일깨우고 무심했던 나를 반성하게 하는 일침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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