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001년 간호사로 입사하여, 올해 24년차로 근무중인 소아과간호사입니다.
입사는 내과로 하였지만 2004년부터는 소아혈액종양파트에서 병동 일반간호사로 아이들을 돌보았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는 소아혈액종양 전문간호사로 외래영역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내과에서 성인환자들을 간호하다가 간호사들의 기피 부서인 소아과로, 그것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소아 혈액종양파트로의 부서 이동은 심적으로 매우 부담되는 일이었습니다.
막연한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고, 소아혈액종양, 흔히 말하는 소아암 환아들과 암을 진단받고 치료중인 환아의 부모님들을 함께 간호하고 응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20대 중반이었던 그때 당시, 저는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았고, 부모의 심정도 알길이 없었으며, 그저 말한마디 한마디가 신경쓰이고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렇게 걱정반 근심반으로 간호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40대 중반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엄마가 된 이후에 환아들을 바라보고, 또 그 부모를 이해하는 폭은 매우 깊어졌습니다.
지금도 처음 신환으로 내원한 보호자들은 너무나 예민한 상태여서 아직도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그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고열로 응급실에 업고 가기도 하고, 입원도 하게 되면서 부모의 심정이 되어 의료진을 겪어보니, 너무나 화가 나는 상황도 발생하고, 속상한 상황도 겪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소아암을 진단 받은 부모의 심정을 100% 공감할 수는 감히 없습니다. 그저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항상 노력하는 중입니다.
현재 제가 전문간호사로 하는 업무 중 많은 부분은 소아암 중에 가장 흔한 질환인 백혈병,
그중에서도 ALL(acute lymphoblastic leukemia)이라 불리는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아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병동에 입원하지 못하고 외래에서 통원으로 항암 치료를 할 때, 항암치료와 관련한 교육을 하며, 그들이 편히 치료하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은 많은 아이들이 항암 치료만으로도 완치에 이를 수 있는 치료 성적이 좋은 타입이지만, 항암 치료기간이 3년 가량으로 긴 시간을 치료해야 합니다.
어느날 문득, 근무중에 3년의 긴 시간을 견디고 마지막 항암 치료를 끝내는 아이들이 가정에서는 치료 종결에 대한 파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병원에서 의료진에게 작은 축하카드를 받는다면,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그간의 고생을 알아주고, 치료를 종결하는 시점을 축하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만의 손카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손카드에 쓸 내용을 고민하다보니, 그동안 3년 치료를 함께 하며, 힘들어했던 모습, 내게 미소를 보내줬던 모습, 울고 떼쓰던 모습, 어느새 훅 커버린 현재의 모습, 여러 장면들이 머리에 스치듯 지나가고 그런 모습들을 카드에 담았습니다.
처음 손카드를 쓴 환아는 평균 3년 치료 기간을 경험하지만, 치료 중 재발을 겪게 되면서 총 치료 기간 7년을 보낸 여자 초등학생이었습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상황이라, 병원에는 매번 주보호자로 할머니와 함께 왔었고, 이 힘든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할머니가 감당하셨던 환아였습니다.
전문간호사가 되고 얼마 안된 시점이여서 사실, 이 첫번째 환아는 치료를 종결하는 것은 함께 했지만, 그간의 치료를 모두 함께 하지는 못했던 상황이라, 카드를 주는 저도 쑥스럽고, 또 처음이라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걱정을 하며 손카드를 할머니께 건넨 순간, 너무나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할머니. 그동안 **이와 오랜 치료 함께 하시느라 너무나 고생많으셨어요. 앞으로는 **이와 함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라고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카드를 손에 쥐어드렸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제 손을 덥석 잡으시면서 꺼이꺼이 우시는 거였습니다.
“선생님, 제가 손녀딸을 7년 동안 혼자 병원에 데리고 다녔어요. 그 힘든 시간 말도 다 할수도 없어요. 근데, 선생님이 처음으로 제 노고를 알아주셨어요.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울면서 너무 고맙다는 할머니를 저도 모르게 와락 안아드렸습니다.
아마도 아픈 아이들을 돌보느라 새벽부터 나와서 근무하는 저를 대신해 제 두 아이를 십수년째 양육해주신 친정어머니가 머리속으로 오버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가슴벅찬 감동이 제 손카드의 시작이었으며, 그 감동이 원동력이 되어 지금까지 수백장의 손카드를 쓰고 있습니다.
손카드의 대상은 저와 함께 외래에서 치료를 했던 치료종결 환아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항암 치료날이 생일이었던 환아, 큰 이벤트를 겪거나, 유난히 힘들어했던 환아들, 축하할 일이 있는 환아들 같이 병원에 온 날이 특별한 날인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함께 일하는 동료 의료진의 기쁨이나 슬픔을 축하하고 위로할 때, 비정규직 직원이 정규직이 되어 타병원으로 이동할 때 등 작은 카드 하나가 주변을 따뜻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알고 있기에 지금까지 8년째 소소한 일상에서 카드쓰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물론 치료 종결 아이들을 축하하는 카드가 가장 많고, 저에게도 가장 설레고, 기쁜 일이긴 합니다.
지금까지 외래에서 항암 치료를 종결한 수백명의 아이들에게 카드를 썼는데, 가끔은 1% 의 확률로 부메랑이 되어 답장 카드를 받기도 합니다. 답장으로 받은 카드가 하나 둘 쌓이면서 간호를 하다가 정신적으로 힘들 때 꺼내 보고 또 꺼내보는 나만의 소중한 보물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20년 이상을 근무한, 아니 아직도 근무중인 간호사의 한사람으로서 힘들고 각박한 병원환경이지만, 나만의 기쁨이 또는 보람이 되는 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후배 간호사님들에게 작은 손카드를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위로하고 축하하기 위해 시작한 작은 손카드
이 작은 손카드는 비록 나의 작은 수고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상대방에게 엄청난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오늘도 힘들게 병마와 싸우는 환아들과 또 그 환아들을 세상 무엇보다 강한 방패가 되어 지켜내고 계신 소아암 환아들의 부모와 함께 일상을 보내고 울고 웃으며 지내고 있답니다.
이 수기 공모의 제목처럼 “간호사, 플러스 스토리” 간호현장에서 일상적인 업무 외에 나만의 플러스 스토리를 찾는다면 훨씬 더 의미있는 간호현장이 될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이상은 24년 차 간호사가 전하는 소소한 간호일상의 작은 플러스 스토리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밤낮으로 아픈 환우들을 돌보는 모든 간호사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Ps: 저의 보물들인 제가 쓴 손카드와 답장 받은 카드들 몇장 첨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