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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플러스 스토리

참신한 시각으로 간호사와 함께 호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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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사랑을 만나는 순간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2010 8, 내가 간호사로 병원에 출근하면서부터 늘 하던 걱정이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출근해서 퇴근하는 시간까지 단 1초도 긴장을 풀고 있을 수 없는 것이 현재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일터에서 환자들을 대할 때 자연스러운 미소와 따뜻하고 여유 있는 말투로 대하기보다는 경직된 목소리와 긴장된 모습으로 대한다.

누가 봐도 ‘신규 간호사구나!’ 딱 알 수 있게.

함께 일하는 선생님으로부터 환자들을 대할 때에는 정말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배웠다. 간호사가 불평하는 환자, 소리치는 환자를 말로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라고 배웠다. 환자를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 간호사가 말솜씨가 좋아서 혹은 논리적으로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간호사가 그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선생님께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세다고 하셨다.

세상의 모든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아주 놀라운 힘을 가진 것이 사랑이라고 하셨다. 기적의 근원은 언제나 사랑이라고 하셨다.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간호사이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 준다고만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환자들에게 주는 것보다 환자들이 나에게 주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학교에서 실습을 하면서부터 수술장에서 일하고 싶었다. 나는 사람이 아프면 일단 약국을 가장 먼저 찾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낫지 않으면 병원을 찾고 마지막에 가장 최후로 선택하는 것이 수술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최후의 선택이었지만, 최선의 선택이 되는 것이 수술이라고 생각했다. 결코 사람이 죽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수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최후의 순간에서 사람을 살리는 수술장에 큰 매력을 느꼈다. 나도 이런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다. 절망 속에서 수술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희망을 찾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그 희망을 찾아 주고 싶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정말 뜻하던 대로 나는 수술장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출근하자마자 설레임과 기대감은 사라지고, 경력에서부터 나오는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의 카리스마에 기가 죽었다. 정작 수술이 시작되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단 하나도 없어서였던 것 같다. 내가 풀이 죽어 있을 때마다 선생님들께서는 나를 격려해 주셨고, 언제나 ‘잘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주셨다. 무엇 하나라도 잘 했다 하면, 언제나 밝게 웃으면서 ‘잘 했어!’라고 크게 칭찬해 주셨다.

내가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 로젯에서 인턴십 실습을 하던 중이었다.

그 곳에서 수 없이 많은 간이식 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보았는데, 그 중에서 나에게 매우 큰 감동을 준 환자가 있다. 남편에게 자신의 간을 나누어 주겠다고 수술 침대에 누운 여자 환자였다. 환자가 마취가 시작되기 전에 급히 나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환자가 나에게 옆 방 수술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남편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수술을 잘 받을 수 있다고. 그러니까 당신도 수술을 꼭 잘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수술을 다 받은 후에 병실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가슴이 뭉클했다. 세상에 100% 안전을 보장하는 수술은 없다. 그것도 간이식 수술을 앞두고 걱정과 두려움이 클 만도 한데, 자신에게 미안해하며 슬퍼하고 있을 남편에게 오히려 힘과 용기를 주려는 환자의 모습에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도 각오할 수 있는 것. 그러나 그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 사랑 때문에 기꺼이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었다.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사랑에게 나는 질문을 해 본다. ‘당신이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죽음과 손을 잡아야 한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과감하게 죽음과 손을 잡을 수 있습니까?

내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죽음을 각오해야만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대답했다. 정말 슬프고 미안하지만, 자신은 평생 혼자 살겠다고. 같은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해 보았다. 정말 슬프고 미안하지만, 나도 그냥 혼자 살 것 같다.

또 한 번 나에게 큰 감동을 준 환자가 있다. 나와 나이가 같은 여자 환자였다. 위암 수술을 위해 수술장에 들어왔다. 나이가 같아서 그런지 그 환자도 나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걸었다. 분명 그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환자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안부를 묻고 있었다. 나는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을 애써 잊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 환자의 손을 잡아주면서 수술이 잘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환자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고 나에게 말했다. 자신을 위로하지 않아도 된다고. 처음에는 너무 무섭고 억울해서 죽음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지만, 이제는 수술을 받다가 죽는다고 해도 두렵지 않고, 슬프지도 않다고. 왜냐하면 자신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히려 감사할 것이 많다고 했다. 두렵지 않은 죽음을 만나는 방법을 죽기 전에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죽음이 일방적으로 자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저 자신이 죽음이라는 것을 만나러 가는 것뿐 이라고 했다. 누가 자신을 그 길로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그저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어른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환자를 보며 그저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마취가 시작되고 작은 희망을 안은 수술이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 참담했다. 이미 복강 전체에 seeding이 되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open&closure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무 마음이 우울했다. 나와 나이가 같은 환자라 그런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단순한 위장 장애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수술로도 치료할 수 없는 위암이었던 것이다. 그 환자가 결국 1개월 후에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왠지 그 환자가 맞이하게 된 죽음이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스스로 긍정적으로 죽음을 인정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눈을 감기 전 마지막 남은 1초까지 죽음을 두려워하고 원망하고 무서워하는 줄 알았다. 그것이 순리이고 진리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죽음은 언제까지나 검은색 이었다. 나에게는 무섭고, 피하고만 싶은 색이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 때문에 긍정의 색, 감사의 색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었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사랑과 죽음의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그 때 내가 대답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모두가 신의 뜻, 운명이라는 것 아닐까요?’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 이와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사랑과 죽음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내가 나 자신이기를 미련 없이 포기해야만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진정한 죽음도 없고, 죽음이 없이는 진정한 사랑도 없다고 생각 합니다.

그렇다. 사랑도 죽음도 나에게 저절로 때가 되었을 때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모든 것이 내 몫이다. 내가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결코 나에게 먼저 찾아왔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에 찾아온 그들을 담담하게 그리고 감사하며 그저 만나러 걸어가는 것뿐 이다.

사랑은 위대하다. 사람이 기꺼이 죽음을 각오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죽음을 앞둔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만나러 가도록 만들기도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 간호사가 자신감을 가지고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행복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도록 만들기도 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도록 만들기도 하며,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만 하지 않고 슬퍼만 하지 않도록, 그 죽음을 통해 감사하는 방법을 알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에게 삶을 찾아주고 싶어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찾아주고 싶어서 수술장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끝에 삶이 기다리고 있든지 아니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든지 결코 그것이 더 이상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든지 그저 긍정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또 담담하게 그리고 감사하며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앞으로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야 하는 것들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중에는 절망도 있을 것이고, 좌절도 있을 것이고, 슬픔도 있을 것이고, 눈물도 있을 것이고, 죽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것들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지 않을 이유는 앞으로 내가 만나야 하는 것들 중에는 기쁨도 있고, 감사도 있고, 사랑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수술침대에 누워야 하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수술장 간호사를 꿈꾼다. 그러나 그 희망이 건강하게 다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 있든지 사랑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이 죽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진리이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나 자신 스스로만이 그 위대한 사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진정한 사랑을 만나러 출발한다. 진정한 죽음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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