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베스트 널싱 경진 대회를 아시나요?
소화기내과에 입원한 알코올성 간경화 말기 환자, F/62세, 20년간 술과 함께 하느라 가족들과는 함께하지 못했던 한 환자가 토혈을 하며 입원한다. 응급 내시경적 지혈술을 시행한 후 중환자실에서 한고비 넘기고 병실로 옮겨 지내게 된다. 그러던 중 혈청 크레아틴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간신 증후군을 진단 받고 정맥류 재 출혈되어 토혈을 한다. 지혈술 적응증 되지 않아 식도 지혈풍선을 삽입 해야하는 상황이였다. 간신증후군의 토혈까지, 의학적으로 연명치료가 무의미한 상황이 벌어진거다. 술로 인해 모든 가족, 동거인 마저 연락이 끊긴 상태, 본인에게 직접 말하기 어려워 고민하던 당직의는 어렵게 환자에게 다가가 DNR 을 묻는다. 의식이 명료해 의사 말을 다 들은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공황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와중에 혈압, 산호 포화도가 떨어지면서 의사는 중환자실 행을 선택하게된다.
중환자실에서 식도 지혈풍선을 삽입 하던 중 심정지 상황이 발생한다. 6분뒤 ROSC 되어 기관삽관, 인공호흡기, CRRT를 시작한다. Irritability 보여 사지 억제대 하며 사투를 벌이던 환자는 2차 심정지가 오면서 중환자실 간지 28시간 만에 사망한다. 무연고 처리 되어 구청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불안에 가득찻던 그녀의 눈빛, 무엇부터 생각하고 말해야 할 지 몰라 멍해 있던 표정, 중환자실 간호기록을 읽으며 느껴졌던 무언의 고통의 외침으로 나는 한동안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그녀 옆에서 그 상황을 모두 지켜보기만 했을 뿐, 그녀를 전혀 도와 주지 못한 나였다.
그 날의 일이 되돌이표 처럼 계속 떠올라 나를 괴롭히며 한 달쯤 지났을 때. 우연히 베스트 널싱 경진대회 사례집을 읽게 되었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이 자신의 간호 경험담을 써둔 책이였다. 나와 같이 딜레마에 빠져있는 간호사의 글도 있었다. 대학 동기들이나 만나야 들을 수 있었던 실무 경험담, 그 외에는 접하기 힘들었던 간호상황들이 어쩜 이리 상세히도 나열되어있단 말인가? 신세계였다. 단 숨에 책 한 권을 앉은 자리에서 정독했다. 한 권을 숨가쁘게 읽고 나니, 나도 이렇게 괴로워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내가 왜 괴로웠고 그 환자가 혼란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된 이유를 찾아 보기로 다짐하게 된다.
여러 논문과 관련 서적을 읽었다, 그리고 임상실무를 하는 동안에도 글속에서 나오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어설프지만 간호상황, 문제해결과정 글을 써내려 갔다. 처음이라 경험 삼아 써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하고 별 기대 없이 공모전에 작품을 냈다.
5월의 어느 날, 밤 근무를 끝내고 노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려고 하는데 병원간호사회로부터 당선 됐다는 문자와 함께 경진대회가 7월예정이라는 문자가 왔다. 너무 기뻐서 밤 근무 하고 난 뒤였는데도 잠이 오질 않았다
주사 놓고 환자를 돌보기만 익숙했지, 경진대회를 위한 파워 포인트를 작업 하는 것도 프리젠테이션을 몇 백 명 앞에서 하는 것도 머리털 나고 처음 이였다. 대형문고에 가서 파워포인트 책을 사고 프리젠테이션 책을 샀다. 아기의 첫 걸음마처럼 모든 것을 아장아장 해나갔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라 힘들었지만 병원을 나름 대표해서 발표를 하러 간다는 생각에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다.
발표 준비가 끝나갈 즈음, 7월 대회 예정 이였던 것이 메르스로 10월로 지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발표 준비가 길어지면서 원고, PTT, 발표 대본 수정을 수십 번 반복했다. 어쩜 볼 때마다 수정할 다른 부분이 계속 눈에 들어오는지, 대회 연기가 되어 준비를 더 철저히 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점점 지쳐 갔다. 생전 처음으로 해보는 프리젠테이션 인데 대외행사에서 하려니 부담은 더욱 커져갔다. 거진 5개월을 진행해왔더니 글자를 씹어 먹어도 되겠다 싶었다. ‘나름 병원 대표로 나가는데 말실수 하거나 꼴등 하면 어쩌나’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더욱 커져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되짚어 보았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처음 해보는 것이 너무 많고 결과와 상관없이 나를 성숙시켜 줄 수 있기에, 이 과정이 있음으로 그 환자의 일로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있던 나를 벗어나게 해주었기에, 그걸로 이미 나는 된 거 였다. 나는 내 안의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경쟁을 벗고 나와의 승부로 생각하니 다시 힘이 났다.
내 아이 돌잔치 때 100명 남짓한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 드려본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보는 것은 처음이였다. 대회 당일 날,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 앞에서 그들을 보고 머리 속이 도화지가 되어 버릴까 싶어 최대한 일찍 가서 대강당을 느꼈다. 연설 석상에 올라 A4 4장으로 요약한 나의 발표 대본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글의 흐름과 연관되는 표정, 손짓도 하나하나 연습했다. 대형문고에서 산 책의 스티븐 잡스가 그랬다.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려면 나부터 감동해야 하며 내가 발표할 글들이 내 것이 되어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마음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진실하게 다가가야 성공한 프리젠테이션이 될 수 있다고, 처음 해보는 프리젠테이션이지만 스티븐 잡스 아저씨 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아무도 없는 텅 빈 강당을 나의 목소리로 가득 채웠다. 한 시간쯤 지나자 그 강당은 나와 소통 하고 있었다.
나의 발표 순서는 3번째 였다. 그토록 강당과 소통했건만 강당이 배신을 하는 건지. 첫 번째 발표자가 발표를 시작하는데 내 심장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요지 부동으로 뛰기 시작한다. 맥박을 재봤으면 심전도 찍자고 했을 정도였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가 내 몸의 일부를 돌아가며 집중하는 명상을 해봤다가, 그도 안되니 그냥 뛰는 심장을 느끼고만 있었다. 발표할 차례가 되자,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가 여기 오게 된 이유를 생각했다. 바로 그녀였다. 그녀의 마지막 눈빛에 사과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 마음의 위로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의 능력에서는 최선 이였다. 이 강당의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담을 토로 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힘든 죽음을 맞이하는 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리고 그녀를 떠올렸고 마음속으로 처음으로 되내였다. “그 때 정말 미안했어요, 당신이 너무도 혼란스러워 괴로워 하고 있을 때, 멍하니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했어요”라고 사과했다.
그녀의 답변 이였을까? 나의 심장은 정상 심박수로 돌아왔다. 나는 강연대에 올랐다. 앞줄의 심사위원, 뒷줄의 수많은 간호사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내가 하는 말을 제일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300백명의 동종 직종의 사람들, 그 앞에서 내가 느꼇던 것들을 풀어놓는 순간, 그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교감의 신호, 발표 내내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손은 정말 엄청난 에너지였다. 수많은 텔레파시를 주고 받으며 발표를 마친 나는 다시금 간호사로 태어난 느낌이였다. 묘한 자부심이 나의 몸을 맴돌았다. 사실 간호사는 전문직이고 특이한 업무 환경이기에 동종 직종이 아니면 교감하기 힘든 직업인데, 교감 가능한 자를 300명이나 모아놨으니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겟는가?
그 안에서 실무를 하며 경험한 일과 그 느낌, 감정까지 나눌 수 있다니, 참 귀한 자리라고 느껴졌다. 10분 발표를 하는 동안 나는 300명의 간호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눈 느낌 이였다.
나는 우수상을 품에 앉았다. 이번 과정을 겪어보면서 나 스스로 성숙되었으며 값진 경험을 한 것에 이미 감사했고 우수상을 통해 병원의 자랑이 될 수 있어 또 한번 감사했다. 경진대회가 끝나고 나서 임상을 와보니 모든 것이 베스트 널싱의 간호과정으로 보인다. 매직아이처럼 처치 하나 하나가 나에게 간호진단으로 재정립 되어진다. 블루오션의 임상 속에서 나는 또 얼마나 환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게 될까? 그들의 가르침을 글로써 풀어가며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통해 매직아이를 경험 하게 되는 그날까지 나는 이번 대회경험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2회를 맞은 베스트 널싱 경진대회, 앞으로 국민노래자랑 프로처럼 장수하는 행사가 되어 나와 같은 미숙한 간호사가 능동적으로 알을 깨고 나아 갈 수 있는 묘한 힘을 계속 발휘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나는 이 정도까지 내가 깨달음과 성장을 얻게 될지 예상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진대회 주최자는 내가 밟아가는 과정의 단계별로 어떤 것을 느끼고 성장하게 될지 이미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경진대회를 만들어낸 분이 존경스럽고 지혜롭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글이 내가 보았던 사례집에 실려 어딘가에 존재할 또 다른 어린 이현미가 그 글을 읽고 자신이 간호사임에 감사할 날이 올 날을 기대해본다. 내가 쓴 나의 생각이 책에 실린다니, 내가 간호사 안되었으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싶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감사 드린다. 나에게 소속감을 주고 있는 강북삼성병원이라는 테두리가 이토록 든든한지 이번에 느꼇다. 한낮 개인의 발표였다면 부담감이 경감되어 발표준비에 최선을 다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발표시 나의 명찰에는 나의 이름이 두 개가 써 있었다. 하나는 이현미, 하나는 강북삼성병원 이였다. 병원 밖으로 나가 보니 나를 감싸고 있는 직장이 그 동안 나라는 인간을 대변해 주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느꼇다
강북삼성병원 안에서 사회 첫 경험을 하고 동기를 만나고 상사를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의 인생의 20대 황금기를 함께 해준, 결혼 주례사 때에도 나를 무직이 아닌 강북삼성병원 간호사로 소개할 수 있게 해준 병원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병원이 나에게 해준 만큼 병원에게 나의 담당 환자를 최선을 다해 간호하는 것으로 보답 선물을 해야겠다.
덧붙임: 사직을 고민하고 있는 1년차 나의 프리셉티 배OO간호사, 이 글을 읽고 마음을 되돌려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