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혹은 돌덩이
선생님은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나고 싶어요?
수 선생님과의 심각한 면담 자리에서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나와 다르게 수 선생님은 속사포로 본인은 다시 태어나면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신다. 아무것도 안 하는 듯 뭔가를 꼼지락거리는. 그런 돌멩이.
우리는 길가의 돌들을 무심코 지나치지만 그 돌들도 다 갖가지의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길가의 돌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실금이 심한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감염의 위험이 높으니 절대 foley catheter를 insert 하지 말라는 교수님. 그 교수님이 ureter stone remove를 하시고 self voiding이 되지 않아 nelaton을 당하신? 이후 foley catheter의 광신이 되신 일.
일하는 도중 갑자기 어지럼증을 호소하더니 토하기 시작. 눈도 못 뜨고 걷지도 못해 우리를 식겁하게 했던 선배의 이석(Benign paroxysmal vertigo).
이처럼 우리 몸에는 여러 돌들이 다양한 사연을 만들어내며 내 주위에 존재하고 있다.
돌은 때로는 역사적으로도 훌륭한 이야기를 전달해 준다.
모두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다윗의 돌.
마지막까지 자신의 목숨보다 나라를 위했던 행주산성의 아낙네들의 돌.
그런 돌멩이가 돌덩이로 내 가슴속에 들어온 적이 있다.
교수님의 아버님이 고열로 흡인성 폐렴으로 입원을 하셨다.
환자분은 폐암으로 타 병원에서 경구용 표적항암제를 투약 받고 있으셨다.
이번에는 흡인성 폐렴으로 입으로 먹는 것이 금지가 되었으며, 환자의 상태도 연하곤란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여 환자분은 levin tube를 insert 하여 약물과 소량의 물을 투약해야 했다.
그럼 경구용 표적 항암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환자분의 보호자인 교수님은 우리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셨다.
경구용 표적 항암제는 계속 투약되어야 한다고.
예전 입원했던 다른 병원에서는 경구용 표적 항암제 파우더 조제를 입원 병동 간호사들이 N95 mask를 착용하고, 장갑을 끼고 파우더로 갈아서 투약해 주었으니 여기서도 부탁한다고.
환자의 상태로는 경구용 항암제를 파우더로 갈아서라도 투약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안전은?
경구용 항암제의 흔하게 보고되는 부작용으로는 복통, 불안, 변비, 설사, 현훈, 기면, 호흡곤란, 부종, 피로 및 인지기능의 장애 등이 있다.
좋은 게 (그냥 다) 좋은 거다.
아니다.
좋은 건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규정이나,
규칙상으로나 모두 맞아야 좋은 것이다.
누구나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이고 지고 산다는 말이 있다.
나는 아직까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경구용 항암제 파우더 사건과 관련하여 가슴에 돌덩이가 “쿵” 하고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
우리 병동 간호사뿐만 아니라 타 병원에서 경구용 항암제 파우더 관련하여 그런 작업을 해주었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 병원에서는 경구용 항암제 파우더를 조제하는 것이 병원 규정에 위배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구용 항암제를 취급했던 그 병원 간호사들이 건강하길 진짜 바란다.
우리는 무수한 사건들 속에서 수많은 돌들을 마주친다.
돌멩이일 수도, 돌덩이일 수도.
같은 돌이어도 사연에 따라 돌의 색이 달라진다.
나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훅’하고 치고 들어오는 가슴의 돌덩이를,
귀엽고 예쁘고 용감한 돌멩이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는 지혜로운 간호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은 행동이 간호사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행주치마의 용감한 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