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호흡기 내과 병동에는 면역체계가 저하된 노인 환자들이 폐암이나 폐렴 등의 질환으로 입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는 치매 환자도 많다. 이렇게 힘든 환자들만 돌보다 보니 어느새 나의 마음에는 가뭄이 들었다.
병원에 출근하면 나에게는 당장 내 카트위에 쌓여있는 항생제, 경구약, 보내야 하는 검사들 그리고 계속해서 추가되는 처방들을 수행하는 것들이 우선순위가 되어 버렸다. 환자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 간호사를 부르는 호출벨 소리는 나의 짜증의 원천이 되었고 내게 가장 두려운 시간은 보호자들이 찾아오는 면회시간이었다.
입사해서 환자들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보호자들에게 공감을 주는 따뜻한 간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규간호사 시절의 나의 다짐은 지워지고 ‘지겨워’, ‘힘들어’, ‘죽겠다’라는 부정적인 단어들만 뱉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아버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폐암 진단을 받으셨다는 연락이었다. 할아버지는 고령이셨기 때문에 진행은 빠르지 않았지만 치매, 고혈압에 폐암까지 투병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맞벌이로 일하는 동안 나와 동생은 할아버지 댁에서 지냈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할아버지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셨기에 항상 건강하실 것만 같았는데 할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으시고 약해지신 모습을 생각하니 매우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희망과 슬픔을 안고 자신의 질병과의 싸움을 견디고 있었다. 병원에 출근해서 돌보는 나의 환자들 모두 우리 할아버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환자들은 다른 연령과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 할아버지처럼 가족이라 생각하니 그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기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본인의 용변은 직접 본인이 해결해보고 싶어 하는 환자의 마음이 눈에 보여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화장실을 동행했고, 항암치료로 식욕이 없어 식사를 거부하는 환자에게는 식사시간 동안 환자의 고통을 공감하며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드시도록 식사 보조를 하였다. 보호자와의 면회시간에는 보호자들의 질문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식욕이 없는 환자는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주실 수 있는지, 환자의 상태변화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에게는 병원에서의 활력징후는 어떤지, 컨디션 변화, 회진 내용 등 보호자들이 물어보기도 전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간호사가 되었다. ‘나의 가족과 같이’라는 작은 생각하나가 나를 이렇게 변하게 하고 나의 진심은 따뜻하게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제는 쉬는 날이면 병원에 없는 동안 나를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도 생겨났다.
아직도 병원에는 질환과 싸우고 있는 힘든 환자들이 많지만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나는 병원 생활이 즐겁다. 어느 샌가 부정적인 단어들을 뱉어내던 내 입에서는 더 이상 부정적인 단어들 대신에 긍정적인 단어들로 채워지고 나의 환자들은 이런 나를 기다린다.
오늘도 나는 8명의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만나러 병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