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님은 남의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라며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었죠
아프신 곳은 없고 식사는 잘 하시는지요? 저는 특별한 일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엔 아버지가 병원을 다니시던 그곳을 걸으면서 그러고 보면 같이 걸어보지 못한 시간들을 안타까워 하곤 하네요. 시인 서정주가 자신을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한 시가 있었던가요. 요즘에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저를 간호사로 키운 건 팔할이 눈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시작한 병원 생활은 순간순간 제 자신이 서글프고 이 상황이 울컥하던 순간이 많았지요. 그런데 이제 삼십대가 되어 일을 하고 있자니 환자들이 안쓰럽고 사람의 삶이 애달파 눈물이 날 때가 종종 있어요. 성숙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뒤돌아보면 아무래도 그때의 나의 환자들은 서툰 저를 만나 따뜻한 간호를 받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어머니께 노래를 불러주시던 그날이 벌써 일년이 지났던가요? 가쁜 숨을 쉬시면서도 어머니께 노래를 불러주시던 아버지를 뵈면서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더랬죠. 나이트 출근을 하며 뵙고 온 아버지의 모습은 이미 하늘에 가까이 계셨는데 전 덤덤히 출근을 했어요. 새벽에 차트를 열어 볼수도 있었는데 굳이 열어보지도 않고 늘 그렇듯 빠듯한 나이트를 뛰고 있었죠. 그리고 새벽 라운딩때 멀리서 울리는 전화 벨소리를 들으며... 전 생각했습니다.
'아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스테이션에서 전화를 받고 온 동료 간호사가 다른병동에서 간호사가 전화를 해주었다며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전 데이선생님께 인계를 주고 가야 하기에 바로 달려가지 못했어요. 그래도 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예전엔 이러한 간호사의 근무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제 할일을 다 하고 갔던 저를 돌이켜 보면 전 정말 간호사가 다 되었나보다 싶었어요.
투병기간동안 많이 못드시고 많이 웃지 못하는 아버지를 뵈었는데 그 순간을 다 지나고 아버지는 편안해 지셨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조금 더 성장했다고나 할까요? 여태까지 많은 DNR 환자의 임종을 보고도 전 사후처치를 할 수는 있었지만 임종 간호사는 아니 었던 것 같아요. 그 날 이후 진심으로 가족을 위로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배우자, 자녀들에게 편안한 곳으로 간 환자를 위해 격려 할 수 있는 진정한 간호사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제 아프지 마시고 식사 잘하고 계세요 ~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