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시절을 지나 어느덧 임상 현장을 지켜온 지 10년차가 된 간호사입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수 많은 환자들의 생로병사를 마주하며, 웬만한 아픔과 이별에는 조금씩 무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환자가 아닌, 매일 근무하며 울고 웃던 동료의 이름을 환자명단에서 확인했을 때, 그리고 그 진단명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가슴 한구석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우리 병동에는 유난히 싹싹하고 밝은 후배가 있었습니다. 3교대의 고된 업무 속에서도 늘 웃는 얼굴로 환자들을 대하고, 바쁜 와중에도 동료들의 일을 도우려 먼저 손을 내밀던 친구였습니다. 체구가 작고 연약해 보였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씩씩하고 밝은 후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날, 급하게 추가 검사를 받기 위해 우리 부서로 후배가 입원했던 때 병동 식구들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적으로 엄청 친한 사이가 아니었을지라도, 매일 같은 유니폼을 입고 바쁘게 뛰어다니며 현장을 지키던 소중한 동료였습니다.
늘 환자의 아픔을 돌보는 데 익숙했던 간호사였지만, 정작 본인의 아픔을 돌보지 못하고, 바로 옆에서 동료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마주하니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부서에 입원해서 검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도대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괜찮을 거야”, “잘 이겨낼 수 있어” 같은 상투적인 위로조차 그 친구의 무거운 마음 앞에서는 턱없이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망설임끝에 찾아간 병실에서는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밝게 얘기했습니다. 무거운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랐습니다.
이후 후배는 치료를 위해 병가를 들어갔고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과 가끔 부서로 찾아오는 후배 덕분에 근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서원 모두가 그 후배가 마음 편히 치료에만 전념해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바랐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1년이란 짧지만 긴 시간 끝에 후배가 복직했을 때, 대견함과 반가움, 그리고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그 어두운 터널을 이겨내고 돌아와 준 후배의 존재가 우리 병동 식구에게 희망이자 위로였습니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타성의 매너리즘에 젖어 환자들의 아픔과 이별에 무뎌져 있던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늘 타인의 아픔만 돌보느라 정작 우리 자신과 서로의 건강에는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오늘도 현장을 지키는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이 스스로의 몸과 마음도 꼭 돌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힘든 터널을 잘 견뎌내 준 소중한 후배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는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