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내가 간호학과에 붙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신신당부를 하셨다.
“민영아, 친절해야 된데이~, 인상 쓰지말고.”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제법 어리광 피우고 애교가 있을 법도 한데 애교는 손톱의 때만큼이나 없는 짜증이나 낼 줄 아는 철없는 막내였다. 그런 막내딸이 사람을 상대하는 간호사를 한다니 제법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사실 나 또한 내가 간호학과에 지원했을 때 잘 해낼 수 있을까? 혹시나 내가 간호사 이미지에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대학생활 내내 서비스가 중요한 영화관이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법이나 미소를 조금이나마 익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들이 지금까지 나를 병원에서 버티게 해 준 큰 밑거름이 된 것 같다.
2012년 3월, 드디어 진짜 간호사가 되었다. 사실 그 때까지도 혹시나 환자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붙임성 없는 간호사, 불친절한 간호사가 될까 두렵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그나마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적은 중환자실이나 수술실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바람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일반 외과병동으로 발령받게 되었고, 숫기가 턱없이 부족한 나였기에 친절이라도 하자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환자, 보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였다.
어느덧 입사한 지 1년이 지나서 어느 정도 병동간호사에 익숙해져 있었고, 매일 고된 업무, 분주한 하루하루에 나도 모르게 초심도 잃은 상태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브닝 근무를 시작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하여 가 보니 어렴풋이 구면인 것 같은 어르신께서 무뚝뚝한 말투로 ‘홍민영 선생님 맞으시죠?’ 라고 하셨는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심장이 바운스바운스하였다. ‘환자분이신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지? 내가 처치를 잘못해서 몸에 이상이 생긴 건가? 아, 어떡하지…’ 그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들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잠깐 간호사 스테이션을 떠나 그 분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입원했을 때 너무 간호를 잘해줘서 고맙다는 뜻밖의 인사를 받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분에 대한 기억이 또렷해졌는데 그 분은 대상포진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 온 환자였으며, 내가 그 분 담당간호사였던 것은 입원 당일 단 하루였다. 사실 내가 그분을 뵈었던 시간은 아무리 많다 쳐도 8~9시간밖에 안됐을 텐데 나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 일부러 내가 일하는 병동까지 올라왔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고 한편으로는 송구스럽기도 하였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나를 만나기 위해 여러 번 헛걸음을 하셨다는 것이다. 퇴원 후 외래에 올 때마다 우리 병동에 들렀지만 항상 내가 없어서 아쉬운 발걸음을 하셔야만 했다고 …… 그 분에게 특별히 친절을 베푼 것 같지는 않았는데 –가끔, 오늘은 너무 친절했다며 나 스스로 뿌듯할 때가 있다.- 여러 번 헛걸음을 하시면서까지, 더군다나 내가 언제 출근할지 어느 시간대에 근무할 지 모르는 가운데 날 만나기 위해 매번 14층까지 올라와보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셨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했다. 나에게는 매일같이 마주치는 수 많은 환자 중 한 사람이지만, 환자분 입장에서는 힘든 순간순간에 병을 치유해주는 고마운 사람 중 한 명이 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취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상대방 특히나 간호를 받는 입장에서는 더 크게 와 닿을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사소한 행동, 표정 하나로 크게 감동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한편으로는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으며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내 사소한 행동, 말투, 표정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각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더욱 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 아무리 업무가 고되고 바빠도 본인의 시간을 할애해가면서까지 나를 찾아온 그 분을 떠올리며 웃으면서, 조금이나 더 힘을 내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주러 온 환자였지만 실은 그분으로 인해 내가 더 많은 힘을 얻게 되었고, 나태해지는 순간에 다시 한 번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드링크 같은 존재였다고 이 글을 통해서라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 분이 나를 만나기 위해 감수했던 시간을 위해서라도 더욱 더 열심히 진심을 다해 환자를 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제는 더 이상 숫기 없는 신입 간호사가 아닌 술기도 뛰어나면서 친절도 겸비한, 따뜻한 간호사로 거듭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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