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안아주고 인계를 시작해요.”
입사 8년 차, 새로운 병동으로 부서 이동한 첫날, 선배 간호사 선생님의 이 말이 참 따뜻했지만, 초면인 사람들과의 포옹은 어색하고 쑥스러워 망설여졌다. 결국 나는 선뜻 일어나지 못한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팀에 녹아들기 위해 애썼다. 익숙하지 않은 동선, 새로운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매일이 낯설었고,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를 자책하며 주눅이 들곤 했다. 신규는 아니지만 연차에 걸맞은 실력과 자신감이 부족해, 오히려 눈치보고 주저하는 어정쩡한 선배가 되어 있었다.
그 무렵,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리더의 태도』라는 책을 건네주셨다. “내가 리더라고 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지만, 뜻밖에도 그 책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리더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고 열린 태도로 함께하는 사람이다.’
그 문장을 읽고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낯선 병동에서 위축되어 있던 나. 실수하면 안 된다고 마음을 조이고 있던 나. 늘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나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내 방식의 리더십을 조금씩 실천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행동이었다.
바로 ‘인계 전, 상대방의 눈을 보고 웃으며 인사하기’ 였다.
전보 온 병동은 늘 바쁘다. 출근 인사조차 눈을 마주치기 어려울 만큼 분주한 날이 많다. 하지만 그 바쁨 속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짧은 미소를 나누는 순간, 그날의 온도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 짧은 눈맞춤 하나가 동료를 향한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되어 돌아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은 실천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후배에게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배우려는 태도가 자연스러워졌고, 선배의 피드백도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사람으로서의 리더쉽을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떠오른다. 그 날, 서로 안아주는 인계가 어색해 고개를 숙였던 내 모습이..
이제는 포옹하지 않더라도, 눈을 맞추는 짧은 순간 속에서 나의 리더십은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나는 아직 작고 서툰 리더지만, 오늘도 출근길에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내가 먼저 눈을 마주치자. 그리고 웃자. 그게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첫걸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