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계절은 초여름과 겨울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우리를 흔들어 놓았다. 따스한 햇살에 반팔을 걸쳤던 어느 날, 다음 날엔 거센 바람과 함께 눈발이 흩날렸다. 햇살은 부서지듯 깜빡이다 이내 숨어버렸고, 마치 자연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했다.
우리 병동 한편에는 "우린 항상 빛나고 있다"라는 작은 사인보드가 있다. 그것은 환자에게도, 우리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문구다. 환자들의 아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의 불빛을 비추고자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성형외과 병동에는 피부암으로 피부 이식 수술을 앞둔 환자가 입원했다. 그분은 30년 넘게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로 고통받아온 환자였다. 매 순간이 두려움으로 가득 찬 그의 일상은 도움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다. "재워주세요. 손잡아 주세요. 안아주세요." 그는 어둠 속에서 작은 온기를 간절히 갈망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불안을 덜어주고자, 인간 중심의 따뜻한 간호를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환자와 그의 딸에게 각기 다른 모양의 희망과 사랑의 불꽃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마음이 닿았을까. 퇴원 날, 환자와 보호자는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모든 간호사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따뜻한 마음을 전해왔다.
A 간호사님, 임신 7개월이시라 힘드실 텐데도 불구하고, 수시로 와서 상태를 체크해 주시고, 손잡아 주시며 안심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앉지도 않고 서서 이야기해 주시던 그 따뜻한 눈빛과 온기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예쁜 딸아이를 건강하게 순산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B 간호사님, 낮 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담당하시는 환자분들도 많으신데도, 많은 요청에도 짜증 한 번 없이 먼저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아산병원 선생님들은 한 분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C 간호사님, 덕분에 수술 후 두려움을 딛고 침대에서 일어나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걱정이 많고 두려운 제게 손잡아 주시며 용기를 주셨던 그 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힘들어 보일 때마다 멀리서도 의자를 가져다주시며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D 간호사님, 수술 후 깨어나 처음 마주한 분이 선생님이셔서 큰 복이었습니다. 38년 동안 공황장애로 약 없이 살 수 없던 제게 ‘할 수 있다’는 말을 건네주셨고, 함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밤 근무 중에도 지치지 않고 찾아와 주신 선생님 덕분에 공황장애 약도 바꿀 수 있었습니다. 평생 해내지 못한 숙제를 이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꼭 완치하여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 간호조무사님, 유리피판술 후 공황장애가 심해 보호자가 자리를 비울 수 없던 순간, 짬을 내어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따뜻한 병원 생활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온기는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속에 작은 촛불을 밝혔다. 퇴원 후, 우리 병동 간호사들은 서로의 따뜻함을 확인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 누군가의 빛이 되어주는 일, 오늘도 우리는 그 빛을 잃지 않기 위해 함께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