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이렇게 인사를 합니다.
“ Сайн байна уу (샌배노) ”
저에게 몽골은 한때 ‘칭기즈 칸의 나라’ 정도로만 인식되던 낯선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2023년 국제진료센터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환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몽골 출신 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으며, 이 경험은 저에게 진정한 글로벌 간호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몽골 출신의 30대 남성 환자가 있습니다. 몽골 출장 중 박람회에서 처음 만난 그는 심부전과 심방세동을 앓고 있었고, 현지 의료 수준으로는 호전이 어려워 한국 의료진의 진료를 희망하며 행사장을 아내와 함께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는 행사장에서 교수님과 저의 설명을 듣고,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자 하는 의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 한국 불법 체류 이력으로 현지에서 비자 발급이 불가능했기에, 귀국 후 제가 직접 환자를 위한 초청장을 준비하고, 외래 진료 일정과 검사 스케줄을 조정하며 입국과 진료를 위한 모든 행정 절차를 지원했습니다.
다행히 몇 달 후 비자가 발급되어 환자는 치료를 위해 입국했고, 순환기내과 및 심장혈관센터 진료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부서들과 긴밀히 협의했습니다. 또한, 언어 장벽으로 인한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통역사를 연계하는 등 진료 전반을 세심하게 도왔습니다. 그는 진료 후 수술이 결정되어 수술 전 평가를 받던 중, 심장 초음파 결과(EF 20%)에 따라 전신마취가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수술 후 ICU 입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수술 시 위험 부담이 커진만큼 보호자 동반이 반드시 필요했고, 저는 배우자가 함께 체류할 수 있도록 초청장을 보내 비자 발급 절차를 지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배우자는 불법 체류 이력으로 입국이 거절되었습니다. 이에 담당 의료진과 다시 협의하여 다른 법적 보호자를 찾는 방안을 모색했고, 환자가 계속해서 처방된 약을 중단 없이 복용하며 안정적인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외래 진료를 추가로 연계하였습니다.
환자는 몽골에서 육류 위주의 식단과 부족한 운동량으로 인해 병이 악화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씨름선수 출신임에도 활동량이 거의 없었던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병원까지 도보로 이동하며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체 활동을 하게 되었고, 젊은 나이의 이점도 더해져 외래를 follow-up 할수록 점차 증상이 호전되었습니다.
생활 습관의 변화와 약물 치료를 한국에서 병행한 결과, 다행히 수술 없이도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귀국이 결정된 환자가 몽골에서도 처방된 약을 꾸준히 복용할 수 있도록 복약 지도를 함과 동시에 담당 교수님께서 제안하신 운동법을 바탕으로 자가 관리 교육도 함께 제공하여 귀국 이후의 건강 관리를 도왔습니다.
특히, 환자는 고비용의 심장 수술과 중환자실 입원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했던 상황에서, 생활 습관 개선과 약물 치료만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되면서 수천만 원에 달할 수 있는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었고, 이는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큰 안도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한국 의료진의 진심 어린 진료와 간호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고, 불필요한 지출도 막을 수 있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몽골로 귀국했으며, 지금도 본원으로 외래를 f/u 하고 있습니다.
몽골과 한국은 약 1,975km 떨어져 있지만, 두 나라 모두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따뜻한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통점은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간호사인 저 역시 문화적 감수성과 공감을 바탕으로 환자와 깊이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을 찾는 외국인 환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시스템을 갖춘 한국은 이제 글로벌 환자들에게 중요한 국가로 자리 잡았고, 간호사인 우리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글로벌 마인드와 문화적 이해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진심을 다한 간호는 결국 마음에 닿는다고 믿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간호사가 단순한 처치자와 돌봄 제공자를 넘어, 환자의 문화를 이해하고 진료 전반을 조율하는 조정자이자 옹호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언젠가 어딘가에서 몽골 환자를 만나게 된다면, 망설이지 말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인사해 주세요.
“ Сайн байна уу (샌배노) ”
그 한마디가, 1,975km 떨어진 먼 나라에서 한국을 믿고 찾아온 환자에게 큰 안심과 신뢰를 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