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햇살 좋은 가을날...
강의실 창밖으로 보이던 얼굴이 참 하얗던, 나를 설레게 하던 아이...
그렇게 짝사랑은 시작되었고 그 아이는 무뚝뚝하고 하루에 몇 번의 전화를 걸고 데이트 신청을 해도 데이트 장소에 친구와 함께 나올 만큼 눈치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의 마음을 3개월 만에 얻고 얼마나 기뻤었는지 그 기쁨에 군입대할 시기도 미루고 대학생 시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남들에게는 고3 수험생 같다는 국가고시 준비도 우리에겐 데이트나 마찬가지였고 그렇게 우리는 행복하게 합격의 기쁨을 함께하며 간호사 커플이 되었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 미뤄 두었던 군입대는 가까워 왔고 그 아이 또한 첫 병원 생활에 많이 지쳐 있는 상황에 저는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화위복 이었는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과는 달리 매일을 보고 살았던 저희가 한동안 떨어져서 지내니 조금 시들해 졌었던 마음도 금세 애뜻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는 힘든 병원생활 속에서도 2년이란 긴 시간을 기다려 주었고 그 길~것만 같았던 시간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전역이 다가왔습니다.
취업의 걱정이 있긴 했지만 그 아이와 함께여서 첫 직장인 작은 병원도,
그리고 이직하고 나서의 비정규직 간호사 생활 또한 항상 행복했었습니다.
고생이라면 고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려운 3년의 시간이 지나고 지금의 직장인 건국대학교병원에 입사하고 보니 배우자에 대한 욕심 또한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속마음을 숨기지 못했던 탓인지 제 마음이 떠난 건 그 아이가 먼저 알게 되 버렸고 그렇게 7년이란 연애 기간 또한 의미 없는 시간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저는 배우자에 대한 욕심에 여러 사람을 만나기에 바빴지만 만나는 사람이 늘어 가면 늘어갈수록 그 아이가 제게 얼마나 희생적이었는지 나와 얼마나 많이 교감할 수 있던 사람이었는지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 염치없이 다시 그 아이를 찾아갔고 역시나 아무 말 없이 그 아이는 저를 받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행복한 2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그 아이는 저에게 부인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제 저는 남편이라 불리며 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간호사라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한명은 수술실 간호사로 한명은 투석실 간호사로 병원생활 중 힘든 상황에 마주칠 때면 서로 보듬어 가며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손잡고 같은 곳을 보며 천천히 걸어갈 수 있어서,
각자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아픈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저희 부부는 서로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간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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