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사를 한 지 9개월에 접어들었다. 간호사가 되어 병원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했던 나의 다짐들을 떠올렸다. 나는 지금 내가 꿈꾸던 간호사가 되어있는지...
내과계 중환자실에서 근무를 하면서 가장 많이 보는 모습은 상태가 악화되거나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와 그 곁을 슬픔으로 지켜내는 보호자였다. 아픈 환자의 모습만큼이나 보기에 안타까운 것은 노심초사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묵묵하게 지켜보는 보호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위로를 해 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던 때 1004day 자원봉사자 모집이라는 병원 공고를 듣게 되었고 고민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지원을 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따뜻한 차와 다과를 제공하는 팀, 혈당과 혈압을 측정해주고 식이관리 등을 교육해주는 팀, 손 마사지와 네일아트 팀. 내가 배정받은 건 네일아트 팀이었다. 병원에서 어울리지 않게 네일아트라니 하는 의구심은 1004day 당일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다른 팀들은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지만 왠지 우리 팀은 썰렁한 분위기였고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수척하고 푸석한 얼굴에 한참은 감지 못한 듯 보이는 질끈 묶은 머리, 후줄근한 운동복 차림의 50대 여성이 쭈뼛쭈뼛 내 앞에 섰다.
“손 마사지와 네일아트 받고 가세요.”
“병원에서 네일아트가 뭐람. 나도 우리 남편 아프기 전에는 이런 거 많이 발랐는데...”
“환자분 아프다고 보호자 분 좋아하시던 거 다 하지 말란 법은 없죠. 예쁘게 받으시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힘내셔서 남편 분 응원하셔야죠”
그제야 내 앞에 자리 잡은 보호자는 부끄러운 듯 손을 내밀었다. 하얗게 부르튼 손을 잡고 울퉁불퉁한 손톱 끝에 분홍빛 매니큐어를 발라드리니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손이 못생겨서 부끄러워”
“환자 옆에 있는 보호자 손이 보송보송 예쁜 게 이상한거죠. 간호사 손도 다 그런걸요.”
우리의 대화를 들어서일까. 먼발치에서 눈치만 보며 망설이는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너도나도 손을 내밀었다. 거친 보호자들의 손을 잡고 있는 짧은 시간 각자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을 위해, 함께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저마다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손을 잡아주는 것,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들이 소소한 행복에 기뻐할 때 함께 웃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간호사를 향한 많은 대중의 시선 중 대표적인 것은 단연 ‘백의의 천사’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바쁜 병원에서 주어진 모든 업무를 하면서 이렇게 바쁘고 힘든데 천사 역할까지 감당하라는 것인가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을 때가 많았다. 내가 생각했던 천사는 한없이 착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어떤 요구도 척척 들어주는 그런 모습이었던 걸까. 그러나 오늘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그저 서툰 솜씨로 그들의 손끝을 물들여준 나에게 천사 같다며 고맙다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수많은 칭찬과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백의의 천사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한 번 더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나의 능력 안에서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얼굴이 예쁘고 손이 하얗고 보송보송한 것보다 힘들어도 미소가 가득하고 거칠어도 따뜻한 손을 가진 것. 그것이 진짜 천사의 모습은 아닐까 싶었다.
병원에 처음 출근하던 날 사명감을 가진 간호사가 되어 나를 만나는 모든 환자와 보호자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은 1004day를 맞아 서툰 천사 역할을 하면서 조금은 내가 꿈꾸는 간호사의 모습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가슴이 따뜻하고 스스로가 대견했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