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와서 6번째 맞이하는 가을.
지금까지 가을이라는 계절은 내게 특별할 것이 없는 계절 중 하나였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던 2013년도의 가을이 내게 준 의미는 따뜻함 그 이상이며 기다림과 함께 느낀 설렘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2013년 10월 4일 1년에 한 번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진심어리고 따뜻한 마음을 환자들에게 베풀어 주는 1004 day 행사 날이다. 평소 이 행사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던 나로서는 참여에 대한 부담과 걱정이 앞섰지만 우연히 이 날 미술치료 봉사를 맡으신 선생님이 오지 못 한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만들기와 미술 분야를 취미로 삼으며 즐거움을 느꼈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간호사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면서 바쁘고 고단하다는 핑계만 점점 늘어갔고 자연스레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다는 것은 내게 힘든 모험이나 도전처럼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그러다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평소 나에 대해 잘 알고 계시던 수간호사 선생님께서 나를 추천해주셨고 조금 가지고 있던 나의 재능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
1004 day 아침, 따뜻한 가을 햇살이 병원 로비를 밝게 비추었다. 우리 병원간호사들은 기본적인 평소의 건강관리에 대해 알려주고자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의 혈당과 혈압측정, 그리고 건강 상담을 시행하였다.
우린 홍보게시판을 부착해놓고 병원로비에서 걱정 반, 설렘 반인 마음으로 준비했고 병원 로비에 들어서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시는 분들을 향해 이내 밝은 목소리로 인사 하였다. 건강 상담 전에는 걱정스럽고 긴장되어 보였던 얼굴이 상담을 통해 밝아진 모습으로 기분 좋게 가시는 것을 보며 긴장했던 내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올해 초 가슴 아픈 일이 있었던 터라 방문하신 아버지 연세의 환자분들을 보며 눈물이 핑 돌며 가슴 한켠이 먹먹하고 쓰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내 곁에 없는 그 분을 대신하여 이 세상 또 다른 아버지들의 건강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가슴 벅찬 일임에 행복을 느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그토록 기다리던 환아들과 함께하는 미술치료 시간이다. 1004day 행사 프로그램으로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고민하고 수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시장조사를 하며 선택한 것은 클레이[점토]를 이용한 비행기와 헬리콥터 만들기이다. 함께 할 환아들이 많지 않아 시작은 비록 아쉬웠지만 모두 즐거워하며 빠져드는 모습과 새로운 색도 만들어 붙이고 바퀴도 달아가며 멋지게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다. 완성 후 가족들에게 보여 주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아기천사들을 보며 나의 마음이 치유되는 듯 했다.
6년 전 신규 간호사로 불리며 사랑과 열정이 넘쳐 모든 게 새롭던 나.
병원에서 환자들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고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 온갖 실수투성인 나에게 건넨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느껴졌던 진심어린 사랑, 그 고마움에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그저 웃음만 짓던 나였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새로움 보다는 모든 것이 익숙한 나.
일과 환자들을 만나는 것이 때론 고되고 힘들게 느껴졌다. 표현에 조금은 익숙해진 내가 보여주는 사랑에 상대방이 답해주고 표현해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1004 day. 하루 행사에 참여하고 나면 그만이라고 생각 할 수 있었던 이 날이 내게 값지게 느껴 질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짧고도 나쁘게 변해가는 생각들이 틀린 것이고 나의 욕심에서 비롯되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욱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똑같은 답을 듣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사랑을 하고 있음을 느끼고 그로 인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2013년 10월 4일은 내가 사랑을 베풀었던 날이 아닌 사랑을 받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