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로 살아온 지 어느덧 20년이 되었습니다. 정형외과 병동의 첫 근무지에서 시작해, 신경외과 중환자실과 병동을 거쳐 지금은 당뇨병센터 외래에서 환자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환자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았고, 때로는 함께 울고 웃으며 ‘간호’라는 일의 진정한 의미를 배워왔습니다.
신규 간호사 시절, 정형외과 병동에서의 첫 나이트 근무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날 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20대 초반의 청년이 응급실에서 병동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다리 골절로 인해 skeletal traction(견인 치료) 을 받아야 했는데, 치료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육체적으로도 고된 일이었습니다. 밤새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해 긴장한 채 땀을 흘리며 일했지만, 내심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환자분은 어렵고 고된 치료를 끝내고 퇴원하셨고, 몇 주 뒤 지팡이를 짚고 병동에 들러 “간호사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하고 웃으며 인사해 주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고, 제 마음 한켠에 조용한 울림이 남았습니다.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는 생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놓인 환자들을 매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중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환자 한 분이 계십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 분이었는데, 아직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가족은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가슴이 무너져 내렸고, 저 역시 그 임종의 순간을 지켜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의료진의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인생의 무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 깊은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또 다른 날 새벽 퇴근길, 저는 중환자실에서 밤을 보내고 병원을 나서던 중이었습니다. 그날 새벽에는 20대 여성 환자가 실려 왔습니다. 환자는 잠시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와 통화하며 “엄마, 이제 퇴근해. 집에 가는 길이야.”라고 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화 몇 분 뒤, 그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저와 또래였던 그 환자의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큰 충격과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 그리고 간호사의 자리가 얼마나 절박한 순간 속에 있는지를 다시금 느낀 날이었습니다.
신경외과 병동으로 옮긴 후에는 긴 입원 생활을 견디는 환자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뇌수술 후 말을 잃은 환자, 손발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환자, 그리고 가족 모두가 지친 얼굴로 병실을 지키는 모습까지. 그들의 긴 회복 여정을 함께하면서 저는 간호란 단순히 의학적 처치를 넘어, 인간적인 온기를 나누는 일임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금은 당뇨병센터 외래에서 환자들을 만납니다. 만성질환이라는 특성상 오랜 시간 환자와 신뢰를 쌓아가야 하기에, 저의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자주 실감합니다. 처음 진단을 받고 눈물짓던 환자가 어느새 혈당관리를 스스로 잘 해내며 “선생님, 저 요즘 괜찮죠?” 하고 묻는 그 순간은 무척 뿌듯합니다. 한 환자분은 “오늘은 제 혈당 100 나왔어요! 칭찬해 주세요!”라며 활짝 웃으셨고, 그 모습에 저도 함께 웃게 되었습니다.
간호는 사람의 가장 약한 순간에 함께하는 일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인연을 통해 저는 간호사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치유와 위로의 힘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이 길을 묵묵히 걷겠습니다. 환자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삶에 가장 가까운 간호사가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