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도 입사한 26년차 간호사입니다.
한방병원, 외과병동, 중환자실을 거치며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임상에서 환자를 돌보던 시간이 참 즐겁고 보람찼습니다. 우리 간호사들만 아는 그 작은 희열들 — 샘플 할 때 주사기에 피가 딱 맺히는 순간, IV 라인이 한 번에 잡힐 때, 환자 포지션이 칼각으로 맞아떨어질 때… 그런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긴 세월을 환자 곁에서 보냈던 내가 이제는 병동의 수간호사로서 1년 하고 2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한 수간호사 상은 부서 간호사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힘듦을 덜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고 그런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 또한 많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싶지 않음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업무와 보고는 끝이 없고, 병동의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환자뿐 아니라 직원들의 마음까지 살피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때로는 버겁게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병동 간호사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해결해 주지 못할 때 “내가 리더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나?” 라고 스스로에게 되묻는 날이 많습니다.
이렇게 힘들땐 선배 수간호사 선생님들이 떠오릅니다.
그분들 또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언제나 부서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계신 모습을 보면 그분들의 미소 뒤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고민과 책임, 그리고 말없이 감당한 무게가 있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때 미처 도와드리지 못한 점, 마음 깊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평간호사 시절 힘든 시기가 없진 않았을 텐데 지금 수간호사가 되어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참 신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언젠가 먼 훗날 , 지금의 이 시간 또한 그리워질 시간일 것이라 생각하고
매일 부서의 일로 분주하고 때로는 마음이 지치더라고
지금 이 순간이 또 하나의 ‘그리운 시간’이 되어 내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을 것을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 수간호사입니다.
때로는 미숙한 판단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묵묵히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우리 부서 간호사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또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