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분주하게 돌아가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눈앞의 생명 하나하나에 집중하느라 바쁘게 하루를 보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문득, 그 치열한 시간 속에서도 한 번쯤 떠오르는 환자분들이 있습니다. 퇴원 후 지금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건강은 괜찮으신지, 가족들과 다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계신지… 그런 궁금증과 함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환자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중환자실 안에서 조용히 침대에 누워 또렷한 눈빛을 지니고 계셨던 분입니다. 의식은 명확했지만 기관 내 삽관으로 인해 한마디 말조차 내뱉지 못한 채, 오직 눈빛과 손가락 끝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전해야 했던 환자였습니다. 하루는 딸과 아들이 면회를 왔습니다. 딸과 아들이 교대로 중환자실로 들어올 때마다 할머니는 눈을 크게 뜨며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눈빛으로 아이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손끝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반가움을 표현했습니다. 딸이 환자분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왔어요.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텨요.“ 할머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대답했고, 손가락을 움직여 ‘걱정하지 마라 애들아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짧은 면회 시간 동안 할머니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말없이 전하는 감정이 중환자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며칠이 지나, 환자의 호흡 상태가 안정되었고, 마침내 익스투베이션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인공호흡기가 제거되었습니다. 튜브를 제거하던 순간, 할머니는 마치 오랜 침묵의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처럼 깊게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겨우 입술을 열었습니다. “ 고마워요. 정말... 고생 많았어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살아 있다는 실감, 그리고 벅찬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비록 간단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고통을 견뎌낸 시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음에 대한 기쁨과 의료진에 대한 깊은 감사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익스투베이션 다음 날, 아들과 딸이 함께 다시 면회를 왔습니다. 할머니는 한참 동안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로 안으며 엉엉 우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고 저는 이 순간만은 이 가족들만의 시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살며시 커튼을 쳐주어 그들만의 시간을 지켜주었습니다. 면회 시간이 끝나갈 무렵, 자녀들이 중환자실을 나서며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다시 엄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어머니 옆에서 묵묵히 함께해 주셔서 어머니가 이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어머니가 매일 선생님들 얼굴을 보며 안심했다고 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이때 저는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환자의 생명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 누군가의 가족, 말하지 못한 마음들을 다시 연결해 주는 다리가 된다는 것을. 말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 다시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동안 기다려온 가족들에게 마음속으로 사랑과 고마움을 수없이 되뇌었을 것입니다. 물론, 간호사라는 이름 앞에는 큰 책임이 따릅니다. 때로는 지치고 벅차며, 마음의 여유조차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있기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존재로서, 저는 앞으로도 더 따뜻한 간호사가 되어, 더 많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도록 나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