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얼마나 선생님을 찾았다고요? 여기 계시면 어떻게 해요... ”
신경외과 외래로 부서 이동 후 몇 개월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나를 찾아온 사람은 반가운 손님, 아니 그전 부서에서 오래 알고 지낸 정말 반가운 환자였다.
나는 처음 중환자실에 입사 후 9년이란 시간을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힘들었지만 대학병원의 중환자실 간호사라는 타이틀이 스스로 멋있었고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그러하기에 오래오래 중환자실 간호사라는 명칭이 나와 함께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고 중환자실 3교대 근무를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첫 번째 아이를 유산하는 아픔을 겪으며 나는 그렇게 20대를 함께 한 중환자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여 도망치듯 부서 이동을 한 곳이 바로 내분비내과 외래였다. 그 당시엔 외래로의 부서 이동이 괜히 창피하고 외부에 떳떳하게 알리지 못했던 거 같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내분비내과 외래는 나에게 또 다른 간호사로서의 자부심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중환자만이 환자라는 오만한 생각은 큰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내분비의 다양한 질환을 공부하고 경험하며 제2의 간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나는 내분비 환자가 좋았다. 특히 가장 많은 질환을 차지하는 당뇨환자들이 안타깝고 서글펐다. 교수님과 무엇을 먹었네, 안 먹었네 하며 싸우는 모습은 마치 아이들 같았고 많은 환자들이 교수님께 혼이 나고 풀이 죽어 진료실을 나오면 담당간호사인 나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슨 중병도 아니고 당 조절 그거 하나 못하나 음식 좀 참아보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당뇨환자만큼 힘든 환자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다른 환자들은 아프면 잘 먹어야 한다고 애처롭게 생각 해주는데 당뇨환자들은 먹지 말라고만 하니 얼마나 서럽고 슬플지... 곧 나는 감정이 이입되었고 당화혈색소의 작은 변화에도 웃고 웃는 환자들의 마음을 공감하게 되었다. 오래 만난 외래 환자들은 가족처럼 느껴졌고 기죽어 있는 환자들에게 나는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여 나의 잔소리는 시작되었던 거 같다.
만성질환의 특성상 한 해 두해 오랫동안 같은 환자들을 응대하게 되었고 어느덧 중환자실에서 일한 만큼의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잔소리하는 동생 간호사, 언니 간호사, 딸 같은 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외래 진료를 오면 으레 나를 먼저 찾는 환자들이 늘어났고 나는 간호사로서 다시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19년 차 간호사가 되었고 몇 개월 전 신경외과 외래로 또 한 번 부서 이동을 하였다. 아직은 새로운 부서에서 적응 중이지만 곧 나는 이곳에서도 간호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신경외과 환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환자들이 외래에 오면 으레 나를 먼저 찾아 올 수 있는 그런 간호사가 되어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외쳐본다. 내가 있는 곳 어디든 나는 간호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