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입니다. 비록 경력도 경험도 짧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여러 환자와 보호자분들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그중에서도 평범하고 화목했던 가정의 아버지였을 한 환자분과 따님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그 환자는 뇌출혈 급성기 치료 후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이실을 갔으나,
자가면역 질환으로 신경계에 이상이 생기면서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추가 검사를 진행하며 인공호흡기를 달고, 약물치료가 진행되었지만 환자는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환자의 따님은 매일같이 ‘우리 아빠 오늘 상태는 어떤가요?’라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따님의 목소리에는 항상 애절함과 걱정이 담겨 있었고, 전화를 끊을 때면 항상 “우리 아빠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곤 하여 여러 중환자실 선생님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또한, 수분 내지 제한된 면회 환경 속에서 가만히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계속해서 말을 걸더군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무 반응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돌아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매일같이 외출하는 것을 좋아했던 만큼 활동적이었던 제 할아버지 또한 뇌출혈로 인해 긴 시간 누워서 천장만 건조하게 바라보던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기에, 그 따님의 간절한 마음이 더욱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환자분이 깊은 혼수상태에 있더라도, 하루에 몇 마디씩이라도 짧은 말을 건네게 되었습니다. 비록 환자분에게서 답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따님의 간절한 마음을 생각하며.
그리고 장기간 약물과 시술 등 여러 치료를 거듭하며 치료의 효과로, 날마다 환자분에게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을 잃고 눈을 뜨지 않던 환자가 어느 순간 눈을 뜨고, 의미 있는 눈 맞춤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지의 반응도 조금씩 나타났고, 일방적이기만 했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환자분과의 소통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환자의 느리지만 점차적인 호전 양상과 함께 점점 밝아지는 따님의 표정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회복의 가장 큰 힘은 의학적인 치료였겠지만, 매일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지켜보며 응원하던 따님의 사랑이 분명 큰 힘이 되었겠죠.
그 후 환자분은 재활과 추가 치료를 위해 병실로 이실하셨고, 그 뒤의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정의 아버지와 딸이었던 두 분이 예전처럼 따뜻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지금도 마음 깊이 바라고 있습니다.
신규 시절에는 내 일만 쳐내기에도 매우 허덕였기에 24시간 침상안정을 하느라 모든것이 제한된 환자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여유도, 보호자분들의 간절한 마음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병원에서 만나게 되고 스쳐가게 되는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 단순히 '치료의 대상'이 아닌,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전부일 그분들을 바라보며, 짧은 순간이더라도 환자분들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려 노력하고, 보호자분들의 마음에도 조금 더 귀 기울여 보고자 합니다.
때로는 그 짧은 눈 맞춤과 고개 끄덕임 속에서도, 서로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아직도 모든 것이 매우 서툰 간호사이지만, 환자와 보호자를 돌보는 일이 곧 마음을 돌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천천히 배워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