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들을 수없이 많이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 환경에 익숙해진 내가 환자의 임종을 그저 일로써 처리하고 있는 것 같아 회의감이 들곤 한다. 그런 순간 나에겐 환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
COPD, 폐암 등 기저질환이 많았던 환자분이 코로나로 폐렴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환자분은 80세가 넘은 할아버지셨는데, 내가 들어가면 나의 성을 붙여 나를 꼭 "전양"이라고 부르셨다. 환자와 가족 모두 환자의 연세가 많고 연명치료를 원치 않았던 상태였다. high flow를 full로 가지고도 숨이 차 힘들어하셨지만, 환자분은 두려워하는 모습보단 언제나 자신의 마지막에 준비가 되어있었다. 환자분께 조금만 힘내자고 응원할 때면, 그분은 ‘죽는건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마지막 순간을 걱정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내 가족을 생각하고 좋은 마지막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그 작은 할아버지가 나에겐 정말 큰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런 환자분께 소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마지막으로 아내의 손 한번 잡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우리에겐 목표가 생겼다. 코로나 격리 기간을 버텨 꼭 가족들과 손잡고 면회를 하는 것. 그날부터 나는 환자가 힘들 때마다, 지치는 순간 일 때마다, 심호흡을 격려하면서도, 의식을 깨우면서도 "할머니 손잡고 인사해야죠! 이제 4일 남았어요! 이제 세 밤만 주무시면 되어요! 이제 내일모레에요!" 하며 의지를 다잡았다. 환자에게 가족들 손잡고 인사하고 싶다는 그 마음은 어떤 응원보다도 그를 버티게 해주는 큰 힘이 되었다.
환자는 결국 무사히 격리 기간을 끝내고, 아내분과 손을 꼭 잡으며 면회를 했다. 그날의 면회는 중환자실 간호사 모두가 응원하고 기다렸던 날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환자분은 가족들과 함께 1인실로 이실하여 임종을 맞이했다.
가끔 그 격리방을 보면 "전양 왔어?" 하고 웃어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늘 작은 것에도 “고마워”라고 말씀하시던 환자분. 그런 모습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한 가족의 마지막 순간에 무뎌지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1인실과 달리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하게 되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생각보다 준비 없이 이별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난 그들에게 가족들과 후회 없는 마지막을 준비하고 충분한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도 내가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